제 이야기예요.
"한마디로 말해 우리 모두는 악하다. 각자가 남에게서 어떤 허물을 찾아내건 간에 똑같은 허물을 찾아내건 간에 똑같은 허물을 자신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사람의 창백한 얼굴이나 저 사람의 마른 몸에 왜 관심을 갖는가? 허물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 서로 더 친절하게 대하라. 우리는 사악한 사람들 사이에 사는 사악한 사람일 뿐이다." -세네카
세상에는 분명 선악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보며 악과 선을 분별하고 악을 비난하며 선을 칭찬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게 되면 악과 선은 뒤엉켜있어 도저히 그 둘을 정확히 분리해 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과 악, 악과 선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서있는 개념임에도 점점 복잡해 보이는 세상과 맞물려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데 합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개인과 개인의 소통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한마디 잘못 내뱉은 말은 어디선가 기어 나와 다시 자신의 앞에 나타나 그가 의도했었던, 의도하지 않았던 것과 상관없이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로부터 심판을 받게 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자신을 선으로 인식하고 자신과 대립하고 있는 상대편을 악으로 규정한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무수한 악이 탄생하게 된다. 어째서 선이 더 많이 탄생하지 않고 악이 탄생하게 되는지는 사람이 자신을 선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에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기 자신과 다투는 사람들도 있다. 내부에서조차 분열이 일어나 선과 악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본성이 악하거나 선하거나 하다는 논쟁은 철학자들에게 맡기고 그저 일상을 살아나가는 우리의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다툼 속에서 과연 누가 선이고 악인 지를 판별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렇지 못한 생각과 행동, 가치에 의해 꺾이게 되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치게 되는 억울함들이 있을 수 있다. 부당한 대우와 존중받지 못함, 자신이 더 선인데 악으로 규정되었을 때의 분노는 바로 풀길이 없어 속으로 쌓이게 된다.
올바른 것만이 선이고 자신이 바로 그 올바름이라 생각하기에 억울함은 깊어져 간다. 어느 정도 상대방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기에 어렵다. 자신을 스스로 악이라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대부분의 악은 악에 대한 영웅적 승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충동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신에게 있어 스스로가 영웅이 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발밑에 다른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것을 영웅이라 착각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악이라 규정할 수 있다. 그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이 비교의 대상보다 더 나아야만 하고 더 존중받아야만 하고 더 잘살아야만 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과 또 다른 무엇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억울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때로 사람들이 어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날 때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것 인지 의문을 갖게 될 때가 있다. 나 역시 수백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왜 내가 아니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답 또한 찾을 수 없었다. 왜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뭐가 특별해서? 내가 옳은 선택을 하며 살았기에? 내가 남들보다 착하기에?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가 역시 착각하는 것 하나는 나만 열심히 살아왔다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 앞서있다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조금 올바른 부분이 있다는 것에 선한 사람이고 상대방은 악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경험해 왔다.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에 빠져 다른 사람들을 특별하지 않다고 판단해 버린다. 물론, 우리는 모두 특별한 사람이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 어느 누가 다른 사람에게 그들의 삶이 가치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사실 우리는 모두가 탕자이고 모두가 악인이다. 아마도 신의 입장에서 보면 오십보백보일 수 있고 도토리키재기와 비슷할 것이다. 아니면 서로가 모두 특별한 존재라서 이런 시련들 속에 던져져 있는 것일 수 도 있다. 그러니 서로를 평가하는 것에서, 서로를 낮춰보는 것에서, 서로를 비교하는 것에서, 서로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연민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늘 착각 속에 빠져 남들을 업신여기는 그런 인간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