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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Jun 10. 2024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다는 환상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들과의 여러 관계들 중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이냐에 대해 나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지금 나 자신에게 힘든 그 관계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힘든 인간관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들은 직장 상사나 직작 동료, 후배, 선생님, 친구, 자녀, 배우자, 부모 등이 될 수 있겠다. 그냥 지금 제일 고민이 되고 힘든 그 관계가 현재 나에게 있어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이 세상을 사는데 그런대로 현명하게 살아온 어르신 한 분과 이야기를 잠깐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그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무수한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그런대로 지혜롭게 잘 대처해 오셨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려운 부분은 바로 인간관계라고 하셨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무례하거나 부당하다고 느끼는 행동을 했을 때 자신이 그저 참고 인내하거나 피하는 것이 옳은 행동인지에 대한 판단문제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음식점이나 쇼핑할 때, 공공기관 등에서의 무례함과 직장에서의 부당한 대우, 가족 간의 억울한 관계 등에 부딪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까?


자신이 어떠한 관계에 있어서 분노가 치밀고 힘들고 억울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에 있다. 자신은 상대방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혹은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상대방이 자신에게 한 어떤 행동이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기에 기분이 나빠지고 마음이 상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과 효율성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 시대이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무시당하기 일쑤이고 스스로도 의기소침해진다. 그렇기에 자신을 부풀리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지나치게 하기도 한다. 어디서든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역시 어쩌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고 또는 안다고 착각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판단해 버리고 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낭만적인 소설들을(어쩌면 헬렌켈러와 같은 위인전이었는지도) 읽으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는 스승이나 친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것만이 내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착각했었다. 이제는 잊고 있는 환상인 줄 알았는데 인간관계에 대해,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해,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문득 가슴속에는 여전히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나에게 있어 영원한 로망이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완전히 이해받는다는 느낌만큼 만족스럽고 충만한 느낌은 없을 것이다. 만일 그 상대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미래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AI로부터 있는 그대로 이해받게 되는 그런 세상이 사람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시대보다 먼저 올 수도 있겠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져만 간다.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섞여있는 진실을 모두 알기란 어렵다. 자신이 보고 있는 일부의 진실만을 두고 전부가 아님을 착각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바쁘고 바쁜 이 시대에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관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판단하거나 조언하는 것은 눈곱만큼도 상대방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오래된 부부만큼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관계는 없다고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 모르겠는 결혼생활과 배우자를 떠올려 보면 저 말은 진실처럼 느껴진다.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는 거기에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누구는 계속해서 마음을 열어둔다.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온전히 인정받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지녔다면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야만 한다. 




"철학자 아이리스 머독은 도덕성이란 추상적인 보편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도덕적 행위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정의롭고 사랑스러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고 비도덕적 행위란 다른 사람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사소한 행위의 누적으로 점차 위대해진다. 직장에서 신입사원을 반갑게 맞아주는 일, 친구의 목소리에서 불안을 눈치채고 괜찮은지 물어보는 일 등등... 도덕성은 인생의 복잡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안다는 것/데이비드 부룩스/웅진지식하우스>


차가운 사람보다 따뜻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처럼 나 역시도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다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 놓는 훈련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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