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에어컨을 키진 않았는데...켜야 하나?
A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 취업 제의가 들어왔을 때 그는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인해 모든 부분이 절망적으로만 보일 때였다. 집에서 나와 혼자 생활한 지 이미 2년 정도 되어가고 있었고 몇 개의 알바로 생활을 이어가는 중에 취업 준비도 틈틈이 하고 있는 전형적인 취업준비생이었다. 나이는 계속 들어가고 있었고 그것은 취업 시장에 있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하기에 A로 하여금 초조하게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또한 자신의 취업 기준을 계속해서 낮추게 하는 이유도 되었다. 정말 마지막 이력서를 낸 회사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A는 그냥 아무 곳이라도 괜찮으니 급여를 제대로 주고 불법적인 일만 아니면 어떤 곳에서라도 일할 수 있을 것이란 심정이었다. 그럴 때 나타난 곳이 전혀 자신이 앞으로 일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분야였고 자신의 앞날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에 정말 딱 걸친 금액을 급여로 제안받았고 A에게 매달 그 금액을 급여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기에 덥석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일하기로 마음먹고 출근하는 첫날까지도 마음은 복잡했다.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도 못했고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일하기로 한 곳에 자신이 책임지지 못할 피해를 입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도 했었다. 아무래도 직접 가서 못하겠다고 이야기하고 후임자를 구할 때까지만 일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회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A보다는 몇 배나 똑똑하고, 몇 배나 되는 경험치가 쌓인 곳이었다. 눈치 빠른 사수는 A에게서 어떤 말이 나오기도 전에 입을 막아버렸다. 그에게 할 일을 정해주었고 한 달에 한 번 월차(그때 당시만 해도 소기업에서는 월차를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도 쓸 수 있으며 야근도 없다고 했다. 계속해서 좋은 점들에 대해 말해주면서 자리로 안내해 주고 해야 할 일을 재빨리 배정해 준 뒤 사라져 버렸다. A는 속으로 요즘 같은 세상에 급여를 따박따박 받는 것 자체가 어디냐면서 사수가 그에게 한 다른 복지 조건들이 모두 사실이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그 외에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한 달 뒤 급여만을 생각했다. 그렇게 그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사회생활의 고단함을, 다니고 있는 곳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한 달이 못되어서였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문을 열고 아침 업무 준비를 하는 것은 A의 담당이었고 업무를 마치고 모든 정리를 하고 마지막 문을 잠그고 퇴근하는 것도 A의 일이었다. A는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였기에 공부가 필요했으나 그것은 스스로가 아닌 강제로 이루어졌다. 토요일 업무를 마치고 다시 일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사장이 이미 말해놓은 거래처나 하청업체에 가서 눈치를 보며 일을 했고 일요일 역시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한 이유라면서 거래처, 혹은 관계자들이 주관하는 세미나 참석을 강요받았다. 처음에는 전혀 생소한 분야였기에 어느 정도 공부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힘들었지만 지시에 따랐다. 어떤 날은 갑자기 당일 출장 업무지시가 떨어져 갑자기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문제는 새벽의 막차를 타고 집에 왔다가 2시간 자고 다시 출근해야만 하는 스케줄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쉴 수 있는 휴일 없이 계속 일하다 보니 점점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좀 쉴 수 있는 날도 필요하다고 말을 해도 아무도 A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A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점이었다. 이곳에서는 A의 힘듦을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하기 바빴고 자신들이 편하고 쉴 수 있으면 A가 더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A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가스라이팅을 시전 했다. 왜냐하면 A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업무에 대해 전공을 한 자신들과 달리 전혀 다른 분야에서 넘어온 사람이었기에 더 노력하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A는 그 말들을 제대로 판단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사회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초년생이었고 알바경험을 뻬고는 첫 직장이었으며 더군다나 급여는 언제나 확실하게 제 날짜에 지급되고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서 이렇게 공부도 시켜주면서 일을 가르쳐주고 급여까지 밀리지 않고 주는 곳은 없다.', '넌 그러니까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만 한다. 고맙게 여겨야 한다.' 등의 이야기를 매번, 직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듣게 되면 그 이야기가 사실처럼 느껴지게 된다. 또한 자신의 실력이, 회사의 기여도가 정말 낮다는 생각에 기가 죽어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말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몇 년간을 일했다. 사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렇게 오래 버틴 막내는 A가 처음이었단다. 다들 A가 1년쯤이면 버티다 나갈 것으로 알았다. 어쩌면 그래서 그렇게 정을 주지 않고 몰아세우기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이런 근무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다. 그래도 A는 급여라도 밀리지 않고 제때 지급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어야 할까?
그래서 몇 년간 버틴 A가 그 회사를 나갔을까?
그 회사를 나간 것은 그를 가스라이팅했던 모든 직원들이었다. 결혼이다, 이직이다 하면서 떠난 직원들 사이로 어느새 A는 사장을 제외한 그 회사의 책임자가 되었고 새로 들어온 직원들에게 자신이 당한 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모습의 회사 선배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괴물은 아마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 속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