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사람의 항변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노동은 신성한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최고의 미덕 중 하나이다. 여전히.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 역시 시대에 맞게 여러 버전으로 변주되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사람들은 현재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이 많다. 자신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만족하거나, 깎아내리거나, 부러워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떨쳐내기 어려운 유혹으로써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는 부분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렇게 인정함으로써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일 수도) 어쨌든 사람들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주변인들과 부딪치고 어울리면서 삶을 살아 나가는 데 있어 서로 비교하는 것을 멈추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집에 사는 이웃 사람들과 비슷한 연봉의 옆자리의 동료, 비슷한 성적을 가진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까지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안심하고, 질투한다.
그런 와중에 문득 자신만 계속 세상에서 소외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거나, 남들보다 뒤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뭔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만 같은 자책감 등의 압박을 받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다. 비슷한 사람들과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빛나게 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되면 그때부터 초조해지게 되는 것이다. 뭔가 이제까지 자신이 너무나 게을렀다거나 부족했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면 후회하면서 이것을 되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미친 듯이 찾게 된다.
세상은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점점 화려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화려함을 한 번 맛본 사람들은 그것을 더욱더 갈망하게 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꿈꾸는 그 편안하고도 안락한 생활을 적어도 자녀들에게 경험시켜 주고, 그렇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나쁜 것이 아니라 합리화하면서 자신의 꿈을 자녀에게 물려주려 한다.
그러면서 진짜로 원하는 삶이 자신의 생각인지 자녀를 위한 마음인지 잊어버리게 되고 혼란스러워지게 된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판단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만이 자신에게 올바른 것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자신이 원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원하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되면 그것을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가 쓸모없는 것을 위해 희생한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현재의 여유로운 시간을 희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느끼는 압박감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렇게 자신만의 기준은 없어지게 되고 (원래부터 없었을 수도 있지만)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정말 비슷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이 돼버리고, 미래의 시간을 당겨 쓰는 낭비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대에 있어 바쁜 사람만큼 그 사람의 능력을 빛나보이게 해주는 액세서리는 없는 것 같다. 조금의 시간이라도 있으면 투잡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자기 계발을 하거나 즐거운 무언가를 위해 끊임없이 시간을 사용한다. 여백의 미 따위는 옛날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고 여유롭고 한가로운 생활은 마음에 부담을 주게 되어 스트레스와 걱정의 원인이 된다.
사실 하루를 48시간으로 사는 방법 같은 것은 알고 싶지 않다. 성공한 사람의 시간 관리의 비밀 같은 것도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가는 사람이다. 천천히 가는 것을 사람들이 못 견뎌한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 혹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여유롭게 시간을 사용하고 싶다. 바쁜 삶을 살았던 때도 있었고, 성공하고 싶어 모든 시간을 썼던 그런 때도 있었지만 여유 있는 시간 속에 한숨 돌릴 여유가 없는 삶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여전히 아무것도 안 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은 죄책감을 동반한다. 끊임없이 '이대로 괜찮은가?', '오늘 하루 잘 보냈나' 등의 생각이 잠자리에 들 때면 머리에 떠오른다. 물론 꿈을 위해 꽉 채운 시간만큼 보람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 역시 자신을 위해서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 누군가와의 비교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은 그 시간이 행복일 것이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좋아하는 책을 아무 걱정 없이 뒹굴거리면서 읽는 것이다. 읽다가 좋은 구절이 나오면 메모도 하고 독후감도 쓰면서 그렇게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죄책감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