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행복
요즘의 날들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시간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은 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괴로운 이 시간들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지만 그것은 쓸모없는 행동이었을 뿐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지나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그저 납작 엎드려 모든 것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 일 없는 나날들마저도 무거운 공기로 나머지 시간들을 계속해서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해 보통의 나날들을 그리워하게 한다.
평균적인 삶이란 것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알고 있다. 사실 남들처럼, 남들만큼이란 말은 이미 내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비교는 어차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너무나 힘든 날에는 그동안 귀로 들어왔던 말들이 얼마나 힘이 있었는지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기도 한다.
'남들처럼 사는 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
내가 생각하는 남들처럼 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것저것 생각해 보면 남들처럼 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욕심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남들처럼에 포함되어 있는 조건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이미 평균을 넘어버린 욕심이다.
관계 역시 생각해 보면 남들과 같은 보통의 관계 따윈 이미 내 욕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남들처럼 사람들과 적당히 잘 지내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내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하는 이상적인 관계가 보통인 것일까? 가끔 싸우더라도 다시 예전처럼 어색하지 않은 관계로 돌아가는 그런 관계가 보통인 것일까?
싸우면서 정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지만 사실 싸우다 보면 상대방이 싫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자주 부딪치게 되면 나랑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피하게 되기도 하고 표면적으로만 관계를 이어나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데 있어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이고 그저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세련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사람의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누가 진심을 말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자꾸만 다른 사람의 진심을 판단하려고 하고 진심을 의심한다. 그렇게 해서 진심을 기어코 확인해야 내가 상처받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언가 싸함이 느껴짐에도 결코 확인하지 않으려고 하는 관계도 있다. 그저 선택일 뿐이다. 자신의 행복이 그런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고 더 편하고 좋은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양적으로는 예전보다 분명히 나아진 것 같은 생활인데 질적으로 얼마큼 행복에 도달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점점 낮아지는 것처럼 관계에 있어서 기준도 낮아져야 한다. 보통의 날들에 만족한다면 보통의 관계에도 만족해야 하는 것이 맞다. 더 깊은 감정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는 관계는 찰나에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게 되고 깊이는 다시 얕아지고 정확하게 보였던 시야는 흐려지게 된다. 물론 이러다 또다시 어떤 원하던 시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행복과 보통의 관계는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고 시간의 무게를 덜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어쩌면 삶에 있어서 겸손함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