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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Oct 14. 2024

큰 힘에는 큰 책임

내가 가진 힘은 작지 않다. 

부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자신의 노력이 아니듯이 가난한 부모로부터 가난을 물려받은 자녀 역시 그들의 죄는 아니다. 어느 시대나 그렇지 않았냐만은 현재도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드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하다. 큰 맥락으로 보자면 부와 가난은 운이었을 뿐이다. 물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 길을 뚫고 치열하게 방법을 찾아 노력한 사람들은 그 운을 거머쥐고 마침내 부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저 열심히 성실히 산다고 해서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는 그렇게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부를 자랑하고 과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이 되었다는, 운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우월감을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으며 느끼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들은 변덕스러워요. 태어날 때부터 그렇습니다. 전에도 그렇게 느꼈지만, 지금은 훨씬 더 통감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성격이 까다롭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남과 다르게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흘끔흘끔 곁눈질하고,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혹시 누가 자기 말을 하진 않는지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귀를 곤두세웁니다. 예컨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볼품이 없을까?.....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은 모든 속내를 속속들이 뒤집어서 보여 줘야 하고, 또 가난한 사람은 성스러운 뭔가를, 그 어떤 자존심도 가져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예멜랴가 말하길, 누군가 그를 무슨 자선 단체에 등록시켰는데, 은화 10 코페이카를 받을 때마다 어떤 공식적인 심사 같은 걸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에게 10 코페이카를 거저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을 구경한 대가로 돈을 지불한 겁니다. 요즘엔 선행마저 어쩐지 이상하게 이루어집니다...... 아마 항상 그래 왔을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도스토옙스키>


가난한 사람들, 즉 힘이 없는 사람들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성이 높은 선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어떤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반대로 그때마다 자신이 힘이 없음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선택과 증명들은 결국 자신의 존엄성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리게 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평등한 존엄성은 이런 현실 앞에서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자신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건 스스로가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존엄은 돈이나 다른 사람들의 찬사, 부러움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 자신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로 결정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 매일, 매 순간의 생각과 행동이 쌓여서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가 영화나 애니에서 보게 되는 히어로들은 각자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힘이었든지, 중간에 새롭게 각성하면서 주어지게 된 힘이었든지 그들은 그 힘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인식하게 되면서 우리가 아는 영웅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영화 속 주인공처럼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적어도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란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무언가의 힘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행위가 자신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높여주는 책임 있는 행동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나약한 인간이고 나보다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도움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다. 


부자라고 해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듯이 가난한 사람이 도움만 바라고 있지는 않다. 누구나 힘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겉으로 나타나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이 기꺼이 도와주고자 할 때 그 사람이 부자이든, 가난하든,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이든 판단하지 않는다. 도움을 주고 스스로에게 기쁨을 느낀다.


자신이 이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없앨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사심 없이 도움을 줄 수는 있다. 그리고 그 도움이 어떤 이들에게는 정말 적절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충분한 상황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망가뜨리는 걸까요? 나를 망가뜨리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이 모든 삶의 불안, 온갖 쑥덕거림, 웃음, 농지거리입니다. 

<가난한 사람들/도스토옙스키>


나와 다른 누군가를 혐오하고 편 가르기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서로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현재의 고통을 위로받고 스스로의 존엄을 지켰음에 만족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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