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jebell Nov 03. 2022

금쪽같은 내 남편

미운 남의 아들

나에겐 관심이 많이 필요한 문제의 자녀가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문제의 자녀는 서서히 사춘기로 접어들고 있었고 나는 그 자녀와의 소통을 위해 자주 동영상이나 책, 다른 전문가들의 조언을 참고하며 열심히 키워가고 있다.

때때로 그 길이 너무 힘들어 그 누구보다 남편의 도움을 좀 받고 싶기도 하고 의지하고 싶기도 한데 남편은 정말 남의 편인지 문제의 자녀보다 더 말을 안 들어 먹는다. 내 자녀라면 때려서라도(그러면 안 되는 거 안다.)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들지만 다 큰 남의 아들에게 그럴 순 없다.

그런 그가 너무나 미웠던 어느 날 이러다 화병으로 내가 먼저 죽겠다 싶은 바로 그날 누구나 다 아는 그 유명한 선생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다 현타가 왔다.


'아, 그렇구나. 내 남편은 역시 문제가 많은 금쪽이었어.'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말을 뒤로한 채 내 발로 걸어 들어간 결혼 생활에 나 역시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나의 친 아들을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내 큰 아들을 자처하고 있는 남편 인척 하는 남의 아들도  내가 키워야만 한다는 것을.


아이를 키울 때 가장 힘든 점은 아이는 나의 약한 부분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그 부분을 건드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아이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게 되며 자괴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금쪽같은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난 적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 나의 친아들보단 말이 통할 줄 알았던 금쪽같은 남편에게 좀 더 기대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남의 아들에게도 똑같이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을 조금 더 긴 시간과 경험과 상처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난 바보였다. 그는 가장 가까운 남이었고 결혼 후 나에 대해 더 알아가려는 노력을 멈춘 게으른 어른인 척하는 금쪽이 일뿐이었던 것이다.


이혼을 생각할 만큼은 아직 아니지만 이대로 계속 서로에 대한 실망을 쌓아간다면 나도 남편도 완전히 지쳐버리게 되고 우리 사이에 사랑은 더 이상 찾아보지 못할 것이 명확해 보인다.


'그는 내가 사랑했던 어른 남자인 게 맞나? 내가 보는 눈이 없었나?'

'나는 결국 이혼해야 하나? 참고 살아야 하나?'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씀과 사람은 잘 바뀌지 않으니 결혼 후 남편을 바꾸려 하지 말라는 말씀, 정말 맞는 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고 있다. 그냥 서로를 있는 그대로, 똑바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진리를 이제야 깨달았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위한 의도를 가진 행동은 그 누구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난 유명한 박사도 아니고 능력도 없지만 내 자녀 그리고 내 미운 금쪽같은 남편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것은 나뿐이니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작은 아들을 키우면서 얻게 된 육아 노하우를 남의 아들에게도 적용시켜보려 한다. 그 결과는 인생이 끝나는 시점에서야 알게 되겠지만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기에 나는 행복을 너무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의 프로그램을 보면 문제는 주인, 부모에게 더 많이 있었듯이 나에게 더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은 남의 아들에 대한 육아서인 동시에 나에 대한 반성문일 수도 있다.


내가 사랑했던 남의 아들이 다시 어른이 되고, 다시 나와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비염, 위염, 중이염 그리고 코로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