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 나의 러닝 길라잡이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고 한 두어 달은 꼼짝없이 붙들려 있는 신세였다.
1차 항암치료는 일주일 정도 걸린 것 같다. 첫날은 엑스레이며 피검사며 이것저것 사전 검사를 하고 가슴에 주사 포트를 심고 하느라 하루가 분주했다. 의사 선생님은 투약 주사의 종류와 기대 효과, 앞으로의 치료 계획 등을 찬찬히 설명해 주시고 이튿날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첫 번째 주사제가 다 들어가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리 표적 치료제라고는 하지만 듣도 보도 못 한 신생 물질이 갑자기 훅 들어오니 멀쩡한 세포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갑작스러운 쇼크에 아버지는 치료를 완강히 거부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치료를 받느니 살 만큼 산 목숨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다행히 아들, 딸의 간곡한 설득과 의사 선생님의 논리적인 설명 덕분이었는지, 몸이 좀 좋아진 덕분인지 아버지는 다시 한번 치료를 해 보기로 했다. 약효가 떨어지기 전에 다섯 가지 주사제를 모두 투약해야 하기 때문에 한나절을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다행히 더 이상 큰 문제는 없었다. 이튿날부터 아버지는 몸이 한결 좋아진 것 같다며 내심 포기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2차, 3차 항암치료도 끝이 났다. 머리가 빠지고 살이 빠지고 입안이 마르는 등 몇몇 약물 부작용이 있었지만 명색이 항암인데 그 정도쯤은 감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3차 치료가 끝났을 무렵 아버지는 누가 봐도 병든 노인네로 부쩍 야위어 있었다. 변기 스위치를 내리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독한 항암제와 싸우기에 80 먹은 노인네의 전투력은 너무나 미약했다. 결국 퇴원한 지 삼일 만에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고 4차 항암치료까지 약 2주 넘게 병원에서 보냈다. 의사도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병원에 갈 때마다 좀 더 지켜보자더니 결국 주사 치료는 포기하자고 했다. 먹는 약물 치료를 하자고 한다. 한 달치 약값이 700만 원을 웃도는 비싼 약이라 주사 치료를 실패한 환자에 한해서만 처방이 가능한 치료법이라고 한다. 다행히 약은 비싼 값을 했다. 오히려 신의 한 수였다. 지금까지 1년 넘게 꾸준히 먹고 있는데 아버지의 암세포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지금은 거의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단, 약 복용만으로는 완전치료가 어려우니 생존해 있는 동안은 당뇨약처럼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변비나 입 마름 같은 약간의 부작용은 여전히 있지만, 아버지는 요즘 엄마와 포켓볼에 빠져 지내며 더없이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계신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건 아버지의 4차 항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를 채우고 치매인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야 하는 입장에서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퇴원을 하고 집에 머무를 동안 나는 잠깐씩 집 근처 하천을 달리기 시작했다. 러닝이 막 유행할 때쯤이라 그런지 하천에는 나 같은 런린이들보다는 제법 숙련된 러너들이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알 만한 브랜드의 러닝 캡과 셔츠, 재킷을 입고 고글을 쓰고 이어폰을 낀 꿈 꾸던 근사한 몸매를 가진 러너들. 아무튼 나는 채 100m도 못 가서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몇 발짝만 떼어도 벌써 숨이 가쁘고 심장이 뻐근했다. 멋진 차림새의 러너들은 마치 초보 러너를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나를 스쳐 지나가 버린다. 이렇게 뛰다가는 매번 1km도 채우지 못 하고 러닝을 포기할 것만 같았다. 체력도 문제이지만 달리면서 느끼는 상대적 위화감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큰 숙제였다. 게다가 3월은 신학기가 시작되는 시즌이라 수업 매칭에 반편성에 강의 준비며 기존에 해 오던 업무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러닝 지식이 전무후무한 나로서는 이 상태로는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달리기를 운영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4월이 되었다. 따뜻한 봄바람을 따라 많은 사람이 하천으로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이는 걷고 어떤 이는 달리고. 나의 신학기 업무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치료법을 바꾸면서 아버지도 병원에 입원할 일이 줄어들었고 어머니를 돌보는 일도 다시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몫이 되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해 볼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달릴 수는 없었다. 달리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내 생활패턴으로는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누군가의 코칭이 필요했다. 문제는 과연 나의 초보 실력을 받아줄 클럽이 있을까? 아니 받아준다고 하더라도 바닥 수준의 내 러닝 실력을 드러낸다는 것은 상당히 쑥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출 때까지는 독학으로 달려보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앱이다.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재밌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여러 가지 앱을 찾아보았는데 웬만한 것들은 모두 개발되어 있었다. 달리기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 검색창에 ‘러닝’이라고 쳐 보았더니 몇 개의 앱이 떴다. 평점이랑 별점, 후기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콘텐츠도 나름 신중히 살펴보았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알아보았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찾은 앱이 ‘런데이’이다.
이 앱은 나에게 러닝으로 통하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 주었다.
다음 글에서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아준 앱 ‘런데이’와 런린이의 30분 달리기 도전 과정을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다. 더불어 14kg을 줄여준 나의 식단 관리도.
나의 글은 전문적인 달리기 정보를 주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단지 나의 런린이 과정을 통해 아직 달리기를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 더 용기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좀 더 즐겁게 달릴 수 있기를 바람이다. 글을 쓰며 지난 순간들의 기쁨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은 것도 이 글을 쓰는 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
*런린이: 초보 러너를 이르는 신조어. "런(run)+어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