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베르크
#철학과음악사이
26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의 원고 중 내가 작가로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페이지가 바로 여기다.
나는 이 페이지를 쓸 때 내게 제발 귀신이 들려붙어주길 바라고 또 바랬다. 그리하여 일필휘지로 내갈긴 내 글 덕분으로 아무도 이 페이지를 읽으면서 숨조차 쉴 수 없길, 몰아치듯 쏟아지는 단어와 문장들에 압도되길, 그렇게 압도된 독자의 영혼이 저 듣기도 어려운 음악을 스스로 찾아 들으며 공감하게 만들어주길... 바라고 바랐던 내 음악가로서의 진심이었다.
내 책을 갖고 있는 사람들보다 안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나는 내 책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부디 이 페이지만큼은 꼭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옮긴다. 광기에 사로잡혔던, 그 열광의 순간을.
#쇤베르크
#달에홀린피에로
어두운 밤, 이곳은 숲이다.
연주는 창백하고 슬픈 피에로의 얼굴을 한 어느 여인이 달에 홀린 듯 방황하는 동작으로부터 시작한다.
야심한 밤, 그것도 숲 속에서, 연인을 찾아 헤매는 여인, 피에로는 여린 달빛을 전등 삼아 애타게 그를 찾을 뿐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내님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싸늘한 주검만이 눈에 띄었다.
이 주검은 누구일까. 피에로는 왜! 지금 이곳으로 홀린 듯 오게 된 걸까? 모든 것은 알 수 없는 의문투성인데 의문은 내 안에 혼란을, 혼란은 착란을, 착란은 자책을, 자책은 가학을, 가학은 쾌감을.
혼란이 낳은 환각의 쾌감은 걷잡을 수 없다. 관성은 본능이다. 그녀는 피에로, 그 어떤 쾌감도 결코 그녀를 웃게 할 수는 없다.
폭주하는 달은 바다의 물결을 일으켜 거대한 너울을 만든다. 거대한 너울을 벗어날 수 없다. 삼킬 듯 부풀어 오른 성난 너울이 쾌락의 관성 위로 올라타면 무엇이든 다 삼켜버리는 짜릿한 사디즘이 되고 이미 폭주하는 달, 너울에 사로잡힌 피에로는 그 쾌락의 고통을 거부할 수 없다.
사디즘은 마조히즘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마조히즘은 사디즘을 결코 증오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운명, 돌고 도는 운명의 쳇바퀴.
걷잡지 못하는 너울에 사로잡힌 피에로는 환락에 취한 착란 중에도 자신이 왜 달에 홀려있는지.
오직 그것이 알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