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격물치지에서 유물론까지.

by 송하영

성리학의 개념 중 "격물치지" 란 것이 있다.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앎을 극진히 추구한다"는 것이다. (짧은 내 생각에...격물치지, 사단칠정 이 두가지를 깨달으면 성리학의 다를 이해한 거 아닌가...싶은데^^)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앎의 극진함을 추구했던 이유"는 단 하나, 그 지극한 앎의 궁극이 <인간다움의 완성>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후에 왕양명이란 사람이 이 격물치지를 해 볼라고 일주일이나 꼼짝없이 앉아 대나무만 쳐다보며 대나무의 이치를 깨달으려하다가 오히려 정신이 헤까닥 돌지경에 이르자 "아...사람의 지식을 완전하게 해 주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구나" 하여 "양명학"이란 것이 생겼다더라.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는 것.

나쁜 마음은 자꾸 몰아내고 좋은 마음, 선한 마음만을 내 안에 남겨두는 것. 즉 매일매일 더러워지는 거울을 닦듯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정갈하게 수련하는 것.

그렇다면 어떤 마음이 좋은 마음이고 어떤 마음이 나쁜 마음일까. 어떤 마음이 내 안에 남겨 둘만한 가치가 있는 마음일까.

여기서 살짝 칸트를 끌어오면^^ 양명학에서의 <좋은 마음>이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정언명령

예를 들어 "왜 정직하게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요 혹은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요 정직할 때 내가 행복하니까도 아니라

인간은 그저 반드시 정직해야만 하니까.

인간의 의지가 반드시 선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 <선한 영향력>을 위해서가 절대로 아니다. 선한 의지의 아름다운 과정이나 공의로운 결과 때문이 아니라 옳은 이유로 옳은 행동을 하는 것이 그저 마땅하니까.

(성리학에서의 사단 즉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등도 선척적으로 인간이라면 애초에 갖고 태어나는, 본능과도 같은, 당연한 도덕적 능력이라 하여 그 사단을 느끼고 실천함에 있어 이유를 붙여 설명할 필요가 전연 없다 하였으니 동서간의 철학이 약간 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당연히 지켜야만 하는 도리와 법도들이 반드시 있다)

관념의 칸트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유물론의 끝판왕, 마르크스의 철학으로부터 탄생한 "공산주의"도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을 존엄한 존재 그 자체로 대하지 못하고 그저 얼마짜리의 부속품(노동자)으로만 바라보던, 피도 눈물도 없는, 산업화 시대의 자본주의에 반기를 들어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과 인간다움을 되찾는 수단으로써 마르크스는 "계급을 타파한 평등"을, "수익의 균등한 배분"을, "노동자의 강력한 연대"를 내세우게 된 것이라고.

결국 모든 철학의 근본은 <인간성의 회복>이다. <인간다움의 완성>이다.

어찌하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바로 <철학>이다. 철학자들마다 제아무리 전부 다 다른 말들을 하고 있더라도 그 모든 철학의 잉태와 탄생, 그리고 오랜 계승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어찌하면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끈질기고 고집스러운 다 똑같은 내용을 말 한 답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