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이 없을 때, 우리는 비판을 수용해야 한다
1.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저한 <공산주의 선언>의 첫줄이다.
그 때 공산주의는 아직 실체 없는 망령이었다. 그러나 이미 지배계급을 불안하게 만들고 세계를 뒤흔들 거대한 예감으로 유령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2.
마르크스 경제학이 점차 대학에서 축소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는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단순한 학문 영역의 축소가 아니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살면서 아직 끝내지 못한 미완의 질문들과 치유하지 못한 상처들을 그만 모른척 덮어두고 그저 방치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3.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위기를 낳고 또 그 위기를 스스로 봉합하며 연명하는 체제임을 보았다.
소외된 노동, 반복되는 위기, 그 위기를 기회로 삼는 잔인한 승자의 독식, 그리고 그 독식이 초래하는 인간성의 몰락 등은 모두 마르크스가 이미 꿰뚫어 본 세계이며 이에 대해 자본주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인간은 경제의 수단이 되어도 좋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할 수 있을 때만이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논한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내쫓을 수 있다.
대답을 찾지 못한 질문은
반드시 비판을 수용해야만 한다!
4.
너도나도 부자를 꿈꾸며 <경제적 자유>를 외치고 있지만 실상은 영끌로 끌어모은 대출 위에 세운, 언제 무너질지 모를, 사상누각일 뿐이다.
너도나도 <갓생>을 산다는 말로 애써 포장하지만 정작 스스로를 달달 볶아가며 실체도 없는 상대와마저도 무한경쟁하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소모일 뿐임을 깨닫지 못한다.
<미라클 모닝> (이게 제일 웃겨^^) 새벽부터 괜히 일찍 일어나 이단잡교의 주문처럼 외우는 것이 <나는 100억 부자가 될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 공책을 펴고 성스럽게 적어내려가는 반복되는 주문 <나는 건물주가 될 것이다>
그래, 나도 너의 그 간절함이 제발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그 꿈이 이뤄지지 못 했을 때, 그러니까 네가 경쟁에서 도태됐거나 운이 심하게 따라주지 않았다거나 너의 그 욕심이 화를 불러 주저앉게 되었을 때 너의 그 거룩했던 <100억 부자의 꿈>은 오히려 악귀가 되어 그 누구보다 너를 잠식할 것만은 잊지 말기 바란다.
너의 위기는 누군가에게 달콤한 기회가 될 것이며 그 불행을 먹이 삼고자 너와 똑같은, 100억 부자를 주문처럼 외우던, <갓생러>가 네 눈 앞에 나타나 굶주린 아귀처럼 찰싹 들러붙을 것임도.
5.
위기가 기회가 될 때 악귀처럼 잔인해지는 인간의 본능을 개인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면, 극한의 경쟁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없는 나약한 자들에 대한 긍휼이 자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구조적으로라도 우리는 반드시 그 소외된 자들을 우리 사회 제도권 안에서 함께 더불어 끌고 나가도록 강제해야만 한다.
아울러 그 도태되고 나약한 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반드시 그 안전장치들을 제도화하여 보장해 주어야만 한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누구나가 이런 생각을 그저 본능처럼 당연하게 할 수 있을 때만이 우리는 구천을 떠도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내쫓을 수 있다.
세금에 대해 "내가 번 돈을 국가가 왜 뺏어가냐"는 멍청한 소리를 아무도 하지 않을 때, 없이 사는 사람들을 향해 벌레라는 접미어인 <충>을 붙여 부르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에 대해 단호한 퇴마식을 거행할 수 있을 거란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아직 우린 마르크스를 대학에서 내쫓을 자격이 없다.
#대안이없을땐비판을수용해야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