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리뷰와 해석 (반전 스포X)
재개봉 당일에 관람하고 곧바로 리뷰를 작성하겠다고 마음먹었었으나, 며칠을 더 고민했다. N회차에 익숙한 나지만 이 영화는 십여 년 만에 다시 보았기 때문에 사실상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과 같았다.
어째서 그을린 사랑일까.
그을린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바논 내전, 종교 전쟁의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레바논(헤즈볼라)는 지금도 이스라엘과 전쟁 중이다.
그을린 사랑은 한 여성이자 어머니의 삶을 통해 거대 집단의 갈등 속에서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그을림' 속에서도 잿더미를 붙잡고 사랑을 추구하는 것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말하는 자유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행동, 의견이 방해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중에는 종교(의식)의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왜 종교를 믿는가? 그건 나약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짐승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빨도, 앞 발톱도 없다. 그렇기에 거대한 자연과 순리 앞에서 무언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인, 폭력, 집단, 신념 등 다양한 모습의 무언가를.
같은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 쓰고 있더라도 생각과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배척한다. 극중 마지막 편지에서 나왈 마르완은 자식들에게 말한다. 함께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비참한 현실이다.
나는 이 영화가 단순히 '잘 만들어진 반전 영화' 정도로 치부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드니 빌뇌브는 어째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가. 이 질문에 답은 본인만이 알겠지만 결국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쟁이 이렇게 끔찍한 것이라고.
영화는 우리에게 평생 한번 겪을까 말까 할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선사하는 매개체다. 내가 감독의 의도성이 보이지 않는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다. 때론 끔찍한 것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우리의 이성을 차갑게 만들어 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지를 두려워한다.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만을 믿는다. 그렇기에 자주 경험하여 일깨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망각하는 것이 나약한 인간이므로.
영화 초반부에 기독교인들이 나왈이 위장하고 탄 이슬람 버스를 탈취한 후 모두 죽이고 불에 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마지막 직전까지 살아남은 것은 나왈과 이슬람 모녀였는데, 나왈은 십자가 목걸이를 내밀며 본인이 기독교인임을 밝히고 살아남는다. 모녀의 어린 딸만이라도 살리고자 본인의 딸이라며 소리쳤지만 결국 딸 또한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 거대한 불길 속에서 개인의 자유 따위는 그을려질 뿐이란걸.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증오는 증오를 낳으며 역사는 반복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이 연쇄를 끊어야 한다. 작은 발버둥일지라도 연쇄를 끊는 방법이란 결국 용서다. 침략이나 복수로 이뤄지는 이익이 아닌 철저하게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용서 또한 결국 사랑이다.
나왈은 죽기 전에서야 후회했을 것이다. 젊은 날 복수심에 불타 기독교 민병단 지도자를 암살했기 때문에 결국 또 다른 파국에 다다랐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너희 이야기의 시작은 약속이란다.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는 약속"
어머니의 당부로 끝나는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을려지지 않기를. 설령 그을려지더라도 누군가는 화합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기를.
그을린 사랑 리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