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물과 친하지 않은 나는 다크나이트를 제외하고 DC코믹스에 대해 배경지식이 많이 부족한 편이기 때문에, 오히려 원작과의 갭 차이에 대한 걱정이나 편견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조커는 DC 블랙 세계관으로 기존의 DC 유니버스와 별개의 세계관이라고 한다.)
조커는 기본적으로 그 기원이 광대이다. <그것>처럼 광대를 다루는 영화나 만화는 수없이 많지만, 확실히 다크나이트 이후의 조커는 ‘광대와는 다른 무언가’로 우리에게 인식된다.
현재 철학적이면서도 희학적인 이미지의 조커를 완성한 것은 단연 히스 레저의 조커이다. 기존의 조커는 코믹스 원작의 캐릭터인 만큼 유쾌한 이미지와 만화적인 요소가 가득하지만 히스 레저의 조커는 그런 이미지를 많이 벗어난 편이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온 건지도 모를 혼돈의 인물인 만큼 그가 시사하는 바는 알 수 있으나 관객의 공감을 이끄는 인물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번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더 달랐다. 원작의 유쾌한 모습과 만화적인 조커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완전히 새로운 조커를 탄생시켰다. ‘아서 플렉’은 가장 인간적인 조커이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이 완벽한 수작이다. 나는 어째서 이 영화가 호불호 논란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겠으나, 단언컨대 히어로, 빌런 영화 중 관객들이 가장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애초에 감독은 이를 의도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서를 화면에서 빠뜨리지 않고 보여주면서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그에게만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찝찝함이 여기서 발생한다. 아서에게 집중하고 있는 관객들은 아서가 고담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분노할 때 같이 분노하는 감정을 느끼고, 이어서 아서의 살인을 보며 통쾌함까지 느낀다.
어째서 그럴까? 아서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지만 처음부터 악인은 분명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자아와 환경을 갖고 있지만, 부당함에 대한 분노를 웃음으로, 남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으로 표출시키려고 한다. 아서의 첫 살인은 계획적인 살인이 아니었고, 우연의 상황이 겹친 ‘우발적 살인’으로 보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아서의 심리에 동조하게 된다.
첫 살인 이후 아서는 분노에 대한 해방감을 느끼고, 이성과 광기, 웃음과 폭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되는데, 중간에 잠시 나온 찰리 채플린의 영상에서 롤러스케이트 묘기를 아슬아슬하게 부리는 모습이 이를 말한다. 또한 아서가 동료에게 받은 총을 실수로 집에서 발포하는 장면이나, 소피가 총 모양의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 역시 아서는 폭력이란 방아쇠를 당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계속되는 사회적 외면과 믿어왔던 부모의 진실까지 알아버린 아서는 폭력과 광기에 모든 걸 맡겨버리고 진정한 조커가 된다. 아서는 조커가 된 후 더 이상 웃지 않게 되는데, 애초에 웃는 병이란 것은 본인의 분노를 애써 이성으로 붙잡고 있는 수단일 뿐이었다.
영화 전체가 명장면의 연속이지만, 그 중에서도 조커의 계단 신은 정말 압권이다.
상징하는 바, 연기력, 음악의 조화가 모두 완벽한 장면이라고 생각 된다.
영화 초반부에 아서는 온갖 수모를 겪은 후 힘겹게 계단을 올라 집으로 향하는데, 조커가 된 후의 아서는 춤을 추며 신나게 계단을 내려온다. 비상식적인 사회 안에서 올곧은 이성을 유지하는 것은 계단을 올라가는 것만큼 힘들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폭력과 광기에 몸을 맡기는 일은 계단을 내려오는 것처럼 쉬운 일이란 것이다. 그리고 폭력과 광기를 해방하면 해방할수록 아서의 춤사위가 화려해지고 능숙해지는 디테일 또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 입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 결말이 아서의 망상인지 아닌지 인데, 감독이 해석은 관객에게 맡긴다고 말한 시점부터 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서가 소피의 집에 몰래 들어간 장면으로 인해 어느 정도 아서의 망상이 영화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확실시 되고 있지만, 결과론적으로 모두 망상이었는지, 과거 회상이었는지, 일부는 현실이었는지는 본인이 믿고 싶은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묻는다. 미쳐가는 사회에서 미쳐버린 사람이 잘못인가, 그렇게 만든 사회가 잘못된 것인가. 아서는 고담을 대표하는 악인 조커가 되었지만 누구보다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한 사람일 뿐이었다.
영화 조커 리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