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보육교사 일대기 5
사실 저도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 담임선생님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단 한분도.
초등학교 때야 기억했겠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정말 기억이 안나더군요.
7세 반을 맡아 졸업을 시킬 때도 속으로.
'얘네도 결국 날 기억 못 할 수 있어. 그저 다정했던 선생님이 있었지. 정도로만 기억해 줘도 고맙겠군.'
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기억해 준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요.
면접이나 , 대학시절 강의 시간에 항상 따라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어떤 교사가 되고 싶나요?"
평생 기억되는 교사.
잊지 못할 교사.
강의시간에는
뭐 이런 답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른 답을 내놓았습니다.
"잊혀도 좋은 교사"
왜 이런 답을 내놓았냐면.
위에서는 담임 선생님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금까지도 선명히 떠오르는 어린이집 시절 선생님과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편식을 하지 않습니다.
번데기도 먹고 날것도 잘 먹고, 특이하다는 음식도
가리지 않고 다 먹습니다.
그런데 향만 맡아도 속이 안 좋아지는 음식이 있습니다.
미역초무침입니다.
5살 어린이집 시절에 속이 안 좋아 반찬을 다 먹지 못했는데.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잔반을 무조건 남기지 않고 잘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제가 다니던 어린이집에는 있었나 봅니다.
미역초무침을 한가득 남겼는데.
다 먹지 않으면 끝까지 식판을 못 치우게 하신다고
해서 울면서 미역초무침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입에 있던 걸 다 토해냈고.
그 이후로는 왜인지 미역초무침을 쳐다도 안 보게 되더라고요.
또 한 가지 기억은.
당시 어린이집 하원 방식이 기사님과 교사 한분이
노란 버스에 아이들을 태워 순차적으로 내려주는
형식이었는데.
어느 날 평소랑 다르게 길이 막혔는지.
아니면 길을 잘못 드셨는지.
늘 3번째로 내려주던 저를 6번째. 7번째가 되도록 안 내려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낯설고 무서워 선생님에게 "선생님, 여기 우리 집 아닌데."
"여기 우리 집 방향 아니에요."
라고 계속 말해도 선생님은 대답이 없으셨고.
결국 계속 물어보자 귀찮다는 듯이
"알아서 내려줄 테니 조용히 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뭐 심각한 트라우마는 아니지만.
그때 느꼈던 안 좋았던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그날의 분위기, 공기...
어린 나이에 겪는 부정적 경험은 평생 갈 수도 있다는 배우신 분들의 말이 맞는가 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의 인생에 평생 남진 못하더라도, 무난히 잊힐 수 있는 교사라도 되려고 합니다.
예전의 저를 다시 만난다면, 안 먹어도 된다고.
잠깐 길이 막혀서 돌아가는 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