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화된 결과물이 없는 직장에선 사람운이 90%다.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릇의 청결도가 곧
성과일 것이다.
혹은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이라면 제품의 완성도가 곧 성과일 것이다.
보통의 직장에선 눈에 보이는 성과나 수치가 있고,
그걸 바탕으로 상사의 태도나 나의 직장 내 평가 등이 결정된다.
하지만 모든 직장이 성과가 명확하진 않다.
어린이집에서 "오늘 애들이 안 다치고 잘 놀았다."
하는건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고 수치화하기 어렵다.
수치화할 수 없는 성과는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안 함'으로 보이거나, 직장선배들의
개인적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르게 평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선배가 기분이 안 좋거나 나에 대한 편견을 가지기 시작하면 듣게 되는.
"너는 일을 못 해. 넌 틀렸어."라고 들리는 지적들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마치 설거지에서 그릇의 청결도보다 손목의 각도,
퐁퐁 짜는 손가락 위치 등을 따져대는 것으로 들렸다.
즉 과정에서의 사소한 규율을 가지고 선배임을 증명하려 하거나, 기강을 잡는것이다.
물론 세상의 어떤 일이던 본업말고 사회생활이나 개인적 태도도 신경써야 한다지만.
특히 나는 일했던 직장 중 몇군데에서는 본업보다 비위맞추기가 주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쏟아야 할 정성이, 선배들의 기준없는 취향을 맞추는 데에 다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좋은 선배들도 많았고, 배울점이 있는 사람들도 만났지만 사람의 차이로 인해 같은 직장임에도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 자체가 썩 유쾌하진 않았다.
어느날, 아이들과 놀이하면서 동물원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위해 교사의 개입은 최대한 줄여주세요."
누군가는
"어느정도 교사가 개입해야하니 기본적인건 구성해주세요."
이건 놀이에 대한 철학과 관련된 것이기에,
교사 개개인의 생각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같은 연령인 아이들인데도 .
누군가는 아이들이 처음부터 시작하게 해달라고.
누군가는 교사가 준비해주는게 옳다고 한다.
어떤 방식을 택하던 그게 정답은 아니다.
아이들과 만든 교통 안전 코스에 종이로 코스명을 붙여주었다는 이유로 "이걸 왜 이렇게 한거에요?"라고 날 선 말을 들으며 전부 뗀 적도 있다.
그 때 든 생각은, 결국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틀린 것은 아닐텐데 . 왜 내 방식이 틀린 것처럼 얘기할까?였다.
정답이 없는 곳에선 선배교사의 말이 정답인건가?
라는 생각에 내 마음대로 뜻을 펼치기 어려웠다.
"테이블을 들어서 베란다에 꺼내세요."
라는 지시를 내리고, 옮기고 나자
"사실 옮길때 팔꿈치의 각도가.. 옮길때 손가락을 잡는 위치가.."같은 이야기만 하고, 정작 테이블을 옮겨놓은 건 안중에도 없는 느낌이었다.
또, 나는 학창시절 키즈카페 알바를 오래 했다.
만약 아이가 조금 다쳤다고 해도, 그걸 근무자 입장에서 판단해선 안된다.
우선 할 수 있는 적합한 조치(약 도포 등)를 하고 부모님에게 전달하는 것과,
그냥 "별거 아니어서 아무것도 안했어요."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당연히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고, 교사일을 하면서도 그 생각은 이어졌다.
그래서 아이가 피가 조금이라도 나면, 약을 발라주거나 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선배 한 분이 "조금 다친건 그냥 넘겨요. 약 바르다가 시간 다 가겠어. 왜 그래?"라고 하신적이 있고.
또 누군가는 같은 상황에서
"아이가 다쳤으면 뭐라도 액션을 취해야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한 적이 있다.
물론 직장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곳이라 구성원들끼리 서로 다른 소리 하고.
후배나 동료를 평가하는 기준이 일의 철학과는 전혀 관련없는 것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들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정해진 순서가 있는 일이 아니면. 적어도 아이를 존중한다는 마음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그 사람이 답답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설거지하는데 그릇이 깨끗하면 됐지.
팔꿈치를 남들보다 조금 높게 들고 한다고.
조금 낮게 들고 한다고.
그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동료나, 부하직원이 실수했을 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내가 판단하는 기준이 가장 중요한 일의 철학과 관련있나?
저 사람을 싫어해서 내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먼저 생각해보고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설거지에서 손목 각도 따지는 사람이 되긴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