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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理性)과 감성(感性)-2

Reason and Emotion

이성은 감성과 대립되는가?

이성과 감성의 조화는 가능한가?

결론은 조화(調和,Harmony)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자아(自我,the self)에 의해 좌우된다.


문제는 자아가 그 조화를 추구하느냐에 달려있다.

실제로 조화의 과제를

맹자(孟子) 중용(中庸)이라 하였다.


서양에서는 자아가 이성을 통해

감성을 통제(統制) 하는 것으로 본다.


하여튼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순간의 과제요

지속해야 하는 것은

또다른 숙제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성과 감성의 중용을 유지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혹자는 말한다.

감성없는 이성은 차갑고

이성없는 감성은 

튀어나갈 향방(向方)을 상실한다.

(Reason without emotion is cold, and emotions without reason lose their direction to stand out.)

인간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싸움과 다툼

집단적으로 투쟁과 전쟁이 일어난다.


이러한 갈등을 야기할 때

시작은 감정의 골이 깊어질 때이다.

그리고 그 갈등이 더욱 깊어지면

항상 대의명분(大義名分:great reason)을

내세운다.

즉 갈등으로 촉발된 다툼을

정당화(正當化.justification)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감정적인 싸움, 전쟁일 뿐이다.


소크라테스(Socrates)의 죽음에

과연 합당한 명분이 존재하는가?

예수(Jesus)의 죽음에

납득할만한 이유가 존재하는가?


결국

이성적인 논쟁의 결과가 아니라

(형식은 절차에 따른

 이성적인 토론을 거쳤지만)

군중심리(群衆心利) 이용하여

사형(死刑)이란 형식으로 몰고갔을 뿐이다.


즉 감정팔이(appeal to pity)였다.


오늘날에도 이런 감정팔이는

반복되고 지속된다,

시위(示威,protest)의 형식은

이성적인가 감성적인가?


반미투쟁(反美鬪爭)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곁에서 보던 미국인이 이런 말을 했다.

"신기하다.

 입에서는 반미(against America) 외치면서

 미국대사관 앞에는 줄을 지어 서있고

 자신들의 자녀들은

 미국에 유학을 보내는 것으로 그치지않고

 미국에 눌러 살게하고

 손에는 스벅을 들고

 가슴에는 영어가 가득  인쇄된 옷을 입고

  모순이다."

그렇다.


촛불집회를 했지만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

세월호 사건의 내막

광우병 사태 등에 대해

명확하게 해결된 것이 없다.

무려 15년이나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왜 해결하지 않을까?


이 또한

감성팔이의 수단은 아닐까?


하지만

감성팔이를 하면서도

이들은 여전히 이성(理性)을

들먹거린다.


누군가 말했듯이

"군중은 이성보다

감성에 취약하다." 말이

옳은 것인가?


다시한번

이성과 감성에 대해

숙고해본다.


나는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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