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더 윌리 증후군을 아십니까?

About Brother with Prader-Willi syndrome

미주가 태어났을 때. 미혁이라는 오빠가 있었다. 엄마는 오빠 미혁을 양육하느라 소진(burn out) 상태에서 미주가 딸이 되었다. 미주는 엄마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미주가 태어난 후 미주 아빠의 퇴근 시간은 당겨졌다. 아빠의 얼굴에는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굵은 미소가 가득했다. 미주는 '나는 이 집의 보배야.'라는 자부심을 갖고 성장했다.


그런데 미주(美珠)는 자신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오빠 미혁(美赫)과 함께 지냈다. 미주가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었을 때, 미주 엄마아빠가 외출을 하게되면 자연스럽게 미혁은 미주담당이 되었다.

미혁은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프레더 윌리 증후군(Prader-Willi syndrome)을 갖고 있었다. 프레더-윌리 증후군은 15번 염색체 장완 근위부에 결손을 포함한 유전자 이상이 발생하여 장애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는 연령과 개인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은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저신장, 근육 저긴장, 수유 곤란, 발달 장애, 지능 장애, 작은 손발, 성장호르몬 결핍증, 시상하부성 생식샘 저하증, 과도하고 억제되지 않는 식욕, 비만, 당뇨병 등이 나타나는 유전 질환이다. 나타나는 증상에 대한 치료법 외에는 아직까지 단일 치료제는 없다.


미주는 예쁘게 성장했다. '장애자녀가 있을 때, 동생으로 비장애아동을 낳거나 입양하게 되면 장애자녀 양육을 소홀하게 될까 두려워요.'라는 주변의 이야기는 그저 우려(憂慮)가 섞인 기우에 불과했다. 미혁 미주 부모는 두 자녀를 최선을 다해 양육했다. 미혁은 동생 미주를 잘 따랐고 미주는 오빠 미혁을 잘 챙겼다. 이런 모습이 누군가 이상적(ideal?)이라고 주장했지만, 미주네 집에서는 일상이었다. 가끔 미주 엄마는 미주아빠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여보 미주가 우리에게는 복덩이에요." 미주아빠는 고개를 끄떡인다.

Pictured by Chatgpt

어느날 미주 엄마가 외출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 외향적이고 사교성이 강한 미주 엄마에게 자주 있는 일이다. 외출할 즈음이면 미주 엄마에게 신경쓰이는 일이 있다. 다름아닌 미혁이다. 그러나 18살이 된 미주는 23살이 된 오빠를 보면서 "엄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라고 밝게 말한다. 미주는 대학을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엄마 나는 미용기술을 배워서 자립할 꺼에요. 대학교는 나중에 필요할 때 다닐꺼에요. 공부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공부를 하겠다는 거에요." 미주의 각오가 매우 단호했기에 그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미주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미용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을 다닌 지 2개월이 되었을 때 미주는 아주 신나는 표정으로 엄마아빠를 불렀다. "엄마아빠!!! 좋은 정보가 있어요. 학원을 다니다 보니까 이 헤어 디자인 쪽에 대학들이 있더라고요. 서경대학에, 대경대학, 경남 정보대학에는 헤어디자인 학과가 있고, 오산대학교에는 준오헤어시그니처(JUNO Hair Signature)학과, 한성대학교에는 콘텐츠 디자인 칼리지(Contents Design College)등 여러대학들이 있는데 거기서는 헤어 디자인(Hair Design)을 비롯해서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이 말을 들은 위주 엄마 아빠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런 학과들이 있어. 우린 전혀 몰랐었는데."

Pictured by Chatgpt(네이버 청아람의 투자기록창고 블로그에서)

이제 19살 미주는 오빠 미혁을 바라본다. 미주는 오빠를 바라볼 때마다 늘 생각하는 것이 있다. "어떻게 오빠는 늘 저렇게 밝은 미소를 갖고 있지? 오빠에게는 걱정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미주가 미스테리라고 생각하는 오빠의 미소 그리고 밝은 표정을 볼 때마다 미주는 늘 신기해했다. " 오빠는 수술도 여러 번 했고 아파요. 사실 오빠는 자기 이름도 잘 몰라요. 오빠가 알고 있는 것은 '오빠'라는 단어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오빠는 나에게 늘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들어요. 오빠가 저렇게 밝긴 밝은데"


그러던 어느 날 미주는 조금씩 바빠지기 시작했다. 헤어디자인 공부가 만만하지 않았다. 이론을 매일매일 공부하고 또한 실습도 해야 되는 일이고 뿐만 아니라 예민한 손기술을 익혀야 하는 과정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할 뿐 아니라 또 개성 있는 헤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이런 미주의 사정도 잘 모른 채 엄마는 또 외출을 하신다. 갑자기 미주에게는 오빠를 케어하는 일이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오빠를 케어하는 일이 싫기 때문이 아니라 헤어 디자인 공부를 하는 일이 힘겨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엄마 오늘은 내가 좀 힘들어. '

'오늘은 학원에서 실습을 더 해야 돼.'

' 엄마 오늘은 미안해!'

Pictured by Chatgpt

이런 일이 반복되자 어느 날 엄마는 미주에게 넌짓이 물어보았다.

'미주야. 오빠 케어하는 일이 어려워서 그러니 아니면 싫어서 그러니?'

미주는 반색하며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잘 알잖아요. 헤어 디자인 공부하는 일이 쉽지가 않아요. 용어도 새로 익혀야 되고 또 실습도 해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오빠 해야 하는 일에 이전만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요.'

미주 엄마는 미주의 말을 듣고 '아이고. 그것을 잘 몰랐구나. 엄마가 오해했어. 그래.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지. 엄마가 잘 밀어줄게.'


2주가 학원을 마치고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갔다. 그만 열심히 해서 그런지 미주는 자격증 시험에 합격을 했다. 자격증을 획득하고 보니 미주에게는 더 욕심이 났다. 조심스럽게 엄마 아빠한테 부탁을 했다.

'엄마 아빠 나 이제 헤어디자인 학과가 있는 대학을 가고 싶어요. 엄마 아빠 힘드시면 제가 돈을 벌면서 해볼게요.'

미주의 말을 듣고 미주 아빠는 펄쩍 뛰면서 대답을 했다.

'미주야. 무슨 소리 그렇게 하냐. 그 정도는 아빠도 능력이 있어. 걱정하지 마. 네가 대학을 가겠다는데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니 걱정하지마.'

이어서 미주 엄마도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을 했다.

'미주야 내가 우리에게 어떤 딸인데 그까짓 것 하나 우리가 도와주지 못하겠니?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열심히 공부해서 뛰어난 헤어 디자이너가 됐으면 좋겠다.'

미주는 응원군이 된 엄마 아빠의 지원을 받으며 대학을 가기로 작정을 했다.

Pictured by Chatgpt (네이버 청아람의 투자기록창고 블로그에서)

몇 개월이 지나서 미주는 대학입학에 성공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니까 친구들과 만나고 또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엄마 아빠는 다시금 오빠에게 매달리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이제는 열심히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오빠 걱정을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이때 미주의 눈에 들어온 전단지가 있었다.

' 장애인 생활지원센터'

이제는 곧장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일하는 국장님으로부터 장애인생활지원센터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이용자의 자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이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아직 자리가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 엄마 아빠. 아빠가 어렸을 때는 장애아동전문 어린이집에 다녔었잖아요. 그래서 오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주로 집에 있었지요 오늘 오빠에게 필요한 기관을 알아봤어요. 장애인 생활지원센터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미주는 장애인 생활지원센터에 대해서 들은 설명을 엄마 아빠한테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했다.


새로운 정보를 알려준 딸 미주에게 고마워하며 엄마아빠는 미주, 미혁과 함께 장애인생활지원센터를 방문하였다. 상담을 끝나고 미혁은 약 한달 동안은 오전시간에만 이 기관을 이용하기로 했다.

미주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아빠에게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제 이야기를 좀 들어주세요.

제가 엄마 아빠 딸이라고 하는 게 너무 감사해요. 특히 미혁이 오빠가 나의 오빠란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요. 오빠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존재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을 깨달았어요. 엄마 아빠가 겉으로는 내가 오빠를 돌보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오빠가 나를 지켜줬어요. 오빠를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됐고요. 내가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 오빠가 나에게 영향을 준 거예요. 어제도 길을 걸어가면서 장애인생활지원센터가 내 눈에 들어온 그 이유는 오빠 때문이었어요. 오빠가 아니었다면 나에게 그런 센터가 눈에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돌아보면 오빠보다 더 연약한 사람도 많았고 사실은 나도 매우 약한 친구였어요. 나는 잘 알고 있어요. 엄마 아빠가 내가 어렸을 때 나를 입양했다는 사실을. 엄마 아빠가 아니었다면 난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엄마 아빠가 없는 나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약한 나를 엄마 아빠가 딸로 삼아 주었죠. 그리고 나에게는 오빠를 선물로 주셨어요. 아직 나는 어리지만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오빠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돌아볼수록 가치 있게 만들어준 사람은 오빠니까요. 헤어 디자인을 잘 배워서 앞으로는 오빠처럼 약한 친구들을 만나서 돕고 싶어요. 단지 돈만 버는 사람이 아니라 나처럼 연약한 친구를 찾아서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래야 엄마 아빠 하나를 따로 삼아주신 그 은혜의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Pictured by Chatgpt (네이버 청아람의 투자기록창고 블로그에서)

미주엄마 아빠는 미주의 얘기를 들으면서 한없이 흐른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미주야 네가 우리 딸이 되어줘서 너무 고맙다. 사실은 우리가 너에게 사랑을 베푼 것보다 너를 통해서 받은 사랑이 더 커. 게다가 오늘 민주가 그런 말까지 해주니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아빠 엄마는 영원히 미주의 엄마의 아빠이고 미주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미주 미혁이 우리 모두 한가족이니까.'


미주는 미혁이가 앉아있는 휠체어를 밀고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웃고 울면서 집으로 갔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반성이 없는 인생은 살아가야 할 가치가 없다.

(An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