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요일에는 금(昑)정적으로
새벽 여섯시에 눈을 떴다.
'오늘이 무슨 요일(曜日)?'
무심코 핸드폰을 열었다.
1월 23일 금요일.
"벌써 금요일이에요?
어떻게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요?"
철규는 답답해 했다.
마치 일주일이 하루가 지나가듯이
휘---ㄱ 하고 흘러가버렸기 때문이다.
주섬주섬 옷을차려 입고 출근 준비를 했다.
바깥 날씨는 피부를 바늘이 콕콕 찌르듯이 차가웠다.
'옷을 너무 가볍게 가볍게 입었나?'
길을 걸어가면서 곰곰히 생각한다.
'속옷, 긴팔 티셔츠, 온열 점퍼에 파카
이 정도면 충분할 텐데 그런데 왜 이렇게 춥지?'
얼굴을 푹 숙이고 길을 걸어갔는데
슬며시 도로가 밝아 온다.
'아침이 길어졌네.'
태양이 아파트 사이에 골목길로
얼굴을 내비치면서
어둠이 물러가는 것을 느낀다.
철규는 출근을 하면서
주말인 오늘과
한 주가 다시 시작되는 월요일을 생각하면서
머리로 이런저런 궁리를 해 본다.
책상 위에 쌓여진 주문서와 결제서류
그리고 덕지덕지 붙어있는 조그만 메모지들.
'난 원래 정리가 잘 안 되는 남자인가?'
내일 모레 40일 바라보면서
아직 철들기는 멀었다고.생각하는
39살의 슬픈 운명을 오늘도
가슴 깊이 쌓아둔 채로 길을 걷는다.
버스가 도착했다. 즐겨는 빠른 속도로 버스에 올랐단다. 자가용은 아내가 이용하고 주차장을 비워둔 지 오래됐다. 차는 주말이 되면 아내가 차를 가지고 와서 그때에나 이용할 뿐 주중에는
이용해본 적이 거의 없다.
금요일을 맞이하게 되면
철규에게는 금(禁)요일이 된다.
집에 도착했어 자유를 만끽해야 하지만,
실상은 이와 정반대로 삶이 전개된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그의 팔에는 팔토씨가 끼워지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향한다.
'오늘 무엇을 먹지?'
오전에 먹고 남은 그릇들을 깨끗이 세척하면서 동시에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머리는 바쁘게 움직인다.
주말이면 지방에서 근무하던 아내가 집으로 온다. 아내가 도착하기 전에 5일간의 홀아비 흔적을 없애야 한다. 일주일에 한번 아내가 집으로 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은평구 불광동으로 아내가 매주 집으로 오는 일은 쉽지않은 일이다. 직장생활을 하느나 지쳤는데 남편을 보러 차를 몰고 운전해서 먼 길을 달려오는 것은 철규가 생각해도 대단한 것이다.
아내가 광주로 발령받아 옮기게 되었을 때, 철규는 아내에게 부탁했다. "여보 우리 광주로 집을 옮겨요. 내가 출퇴근하던가 아니면 내가 일주일에 한번 광주로 올께요." 그러나 아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서울 비록 은평구이지만 어떻게 마련한 집인데 옮겨요. 서울은 그래도 서울입니다. 내가 평생 광주에 있겠어요. 내가 움직일께요. 대신 차는 내가 가져갑니다." 철규는 아내의 논리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이후로 철규는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새벽 아내가 출근할 때까지 본의아니게 가사(家事)를 전념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회사를 떠나서 집으로 오게되면 누구에게는 황금휴일이겠지만, 철규에게는 엄금일(嚴禁日)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철규가 불행하거나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번 아내와 만나서 지내는 날은 신혼생활(新婚生活)을 누리는 느낌을 날마다 새롭게 만끽하게 되니까 나름대로 행복한 날을 지내는 것이다.
아내와 결혼을 한 지 벌써 5년째. 서른 넷에 서른을 갓 맞이한 아내를 만나서 결혼했다. 결혼을 한 지 2년이 막 지났을 때였다.
"우리 이제 아기를 가질까?"나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던 그날 오후. 아내는 "나 경기도 광주로 발령받았어요. 어떻게 하지? 아기 갖기는 어려울 것 같애."라고 근심이 가득한 어조로 철규에게 전화를 했다.
감사하게도 경쟁율이 조금 낮은 은평구에 작은 아파트도 마련했던 때였는데. 이렇게 주말부부가 된 지 벌써 삼년째를 지나고 있다. 집안 정리를 끝내고 된장찌개를 올려놓자마자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이야?"
아내는 피곤한 표정으로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대답한다.
"나말고 또 누가 있어요?"
철규는 늘 했던 것 처럼 아내가 들고 온 작은 짐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당신은 소파에서 쉬고 있어요. 오늘저녁은 된장찌개니까 곧 끓을꺼에요."
아내는 겉옷을 거실 바닥에 벗어 내팽개치면 소파에 벌러덩 두다리를 대자로 뻗으며 앉는 것이 아니라 눕는다.
"아이고 그래도 우리집이 좋다. 저녁을 해놓고 기다리는 서방님이 계시니."
아내는 피식 웃으면 남편이 들으란듯이 큰소리로 외친다.
철규는 빠른 속도로 식탁 위에 준비한 음식을 올려놓는다. "자 이리 와요. 지쳤겠지만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식사는 해야지요? 자..."
아내는 철규를 바라보며 식탁에 다가와 앉는다. 앉아서 수저를 남편과 자신의 것을 서로 마주보게 정리한다.
"금년에도 발령이 없네. 계속해서 광주에 있을 것 같애. 사실 쬐금 기대했는데..."
아내는 한숨을 푹 쉬면서 허공을 향해 독백하듯이 내뱉는다.
철규는 아내의 푸념을 들으면서 수저를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한다.
식사를 마친 후, 두사람은 주방에서 몇개 되지않는 그릇들을 설거지에 집중한다.
물끄러미 아파트 거실 밖의 검은 하늘 위 반쯤 열린 달을 바라보다가 아내가 입을 열었다.
"여보 내생각은 ..."
철규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당신 생각은 ?"
아내는 마음을 차분하게 안정시키려는 듯 보였다.
몆번의 심호흡을. 하고 난 후 입을 열었다.
"지금이러도 아기를 가졌으면 해요.
사실 결혼햬서 초반에는 신혼생활도 즐겨야하고
집도 장만하고 대출도 갚겠다는 의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갔지요. 그러다 광주로 발령이 났어요. 이 기간이 짧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어요. 우리 생각이 너무 우리 계산 위주로 제한되었던 것 같아요. 차라리 아기를 낳고 육아휴직기간(育兒休職期間)을 가지면 더 좋지않았을까요? 우리 나이가 더 들게되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들고, 낳는다고 해도 우리 체력이 아기를 기르는데 힘들어지지 않을까요?"
철규는 아내가 조곤조곤 내뱉는 말을 한마디도 빠뜨리지 많고 모두 경청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허리를 구부려 상체가 아내에게 더욱 가까이 기울인 상태로 아내의 말을 모두 삼켜버리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아내가 말을 마치자 철규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히는 듯 잠시 상념(常念)에 빠진 듯 보였다,바낕은 더욱 어두워지고. 거실 벽에 세워둔 TV는 환한 장면이 홀로 화려하게 변신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말이요."
철규의 말이 시작되었다.
"당신이 부담될까봐 침묵했었지요. 오늘 당신이 해준 그 생각을 당신이 광주로 벌령받았을 때부터 하고 있었어요. 다만 당신의 생각을 몰라서... 부담될까봐 기다리고 있었던 거에요. 사실 우리 나이에 아기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 있어도 충분하지요. 세상이 좋아졌어요. 육아휴직 기간을 충분히 갖고 복직해도 좋은데... 그 생각을 말해줘서 고맙지요.
육아휴직은 남편도 할 수 있어요. 나도 당신과 함께 아이 양육하는 일에 함께 할께요. 사실 당신이 매주 광주에서 집으로 운전해서 온다는 것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지요."
철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을 날라가던 매가 삵이 사냥해서 물고가던 쥐 한마리를 수직강하해서 날렵하게 채가듯 아내가 말을 이어갔다.
"난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전혀 눈치도 채지 못했네요. 단지 나만 생각했는데... 당신이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 앞에 서있는 모습도 볼만하다고 여겼던 적이 더 많아요. 또 나날이 진보하는 당신의 음식솜씨가 나를 추월한 것 같아서 좋기도 했지요. 하하하"
모처럼 부부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면서 웃음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웠다.
"여보 오늘이 금요일(金曜日)이잖아. 사실 당신이 광주로 내려간 이후 우리는 금요일 (禁曜日)의 반복이었어요.아무 것도 안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피로를 풀다가 또 직장을 항해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같은 난민의. 삶을 우리가 지나온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 너무 좋네요."
철규의 힘이 실린 말을 듣고 아내도 대답한다.
"나도 동감(同感)해요. 이제부터 금요일(昑曜日)로 지내요. 이 금요일(昑曜日)은 밝을 금(昑)의 뜻이에요. 오늘부터 어두운 근심이나 걱정을 드러내고 밝게 보내요. 그러면 오늘은 더욱 뜻있고 뜨겁게 불금을 보내볼까요?"
아내의 적극적인 제안이 제시되는 순간 철규는 아내를 번쩍 안아 올렸다.
"오늘 밤이 짧을 것 같아요. 하하하"
어떻게 월요일을 맞이했는지 모른다. 철규부부에게 더이상의 금요일(禁曜日)은 찾아오지. 않았다.
5년 후. 두사람은 두 딸의 엄마아빠가 되었다. 육아휴직이 아내와 철규는 육아휴직을 교대로 이용했다. 아내만 육아휴직을 하다가 경력단절이 생겨 아내만 불리하게 되는 일을 보고 싶지 않았다. 육아휴직 기간 중에 비록 어린아기들이지만 철규와 아내는 가까운 일본과 동남아로 여행도 다녀왔다.
철규는 육아휴직을 끝나고 복직을 신청했을 때 차장으로 승진했고 철규아내는 서대문 지소로 발령을 받았고 과장이 되었다.
"여보. 우리 두 공주.
너무 기쁜 날이다. 아니 기쁜 날의 연속이다.
좋다. 좋아."
철규 부부는 가까워진 출근길을 생각하면서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여보 신입사원이 된 것 같아요
나 잘할 수 있겠지요?"
"그럼. 당신이 누군데. 아이 둘 양육하면서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그동안 지격증도 세개나 획득했잖아요. 당신 덕분에 나도 바리스타 자격증을 받았잖아요. 당신은 충분히 해 낼수 있어요. 이제 우리는 두 아이의 부모니까요. 힘냅시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불광동에서 시내로 출근하는 첫날...
게다가 자가용에 부부가 함께 타고 출근하는 날.
"여보 퇴근할 때 데리러갈께요."
"아니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아이들 픽업하기로 해요."
두사람은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