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할 말이 있어요
맹여사의 남편 성부장이
등장했다.
이미 술을 마신 듯하다.
이미 집에 들어서자마자
맹여사의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성부장은 전혀 기가 죽지않은 모양이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더니
"많은 분이 오셨네요.
어 박전무! 주여사님!김사장!구피디!
아니 오박사도 행차하셨군."
술 기운은 남아있는 것 같지만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다들 모였는데.
좋은 분위기를 제가 흩으러놓은 것은 아닌지
죄송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함께 해도
되게시요?"
성부장이 들어와서 인사를 하면서
분위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 했다.
이 순간 맹여사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자 이것 보세요. 지금도 저 양반.
술에 취해있지요? 저와 함께 지내왔던
35년간 늘 한결같은 모습입니다.
멀쩡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심각한 상태입니다.
아버지가 늘 제정신이 아니니까
애들까지 정신줄을 놓고 살아가는 것 같아서
요새 내 몸에는 순간순간 두드러기가 솟고
게다가 붉은 점이 이곳저곳에서 보입니다.
또한 제몸의 체온도 비정상일 뿐 아니라
이젠 밥맛도 없어서 TV에 나오는
먹방 프로그램을 보아도
식욕이 당겨지지 않아요
이 뿐 아니라 동창 모임 같은데 가고 싶어도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있어요."
숨도 쉬지않고 말이 청산유수와 같이
내뱉어지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주여사의 목소리도
더욱 격앙되고 있었다.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 처럼.
"맹여사님 말씀 참 잘 하셨어요,
이 자리에 박전무, 성부장님
당사자도 계시니까 참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저는 잘 몰랐는데 맹여사님이 겪는
신체적 증상을 저도 똑같이 겪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저만 그런 것은 아니군요.
박전무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까요?"
이때 박전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반 그만하세요.
당신까지 왜 이렇게 큰소리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거에요?"
이에 질세라 주여사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졌다.
"이것보세요.
제 입을 막으려고 나서는 모습 보세요.
늘 이렇다니까요.
제남편은 성부장에 비하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지 않아요.
도대체 오늘 제남편을 집에서 며칠동안
볼 수 없다가 이 자리에서 만나게되었다면
여러분 이해가 되겠습니까?"
자리에 앉아서 분위기를 살펴보려고 했던
성부장은 정신이 빠짝들었다.
술기운은 한순간도 싹 사라지고
자신을 향한 아내의 불화살이 결코
심상치않음을 알아차렸다.
이뿐 아니라
박전무의 아내가 흥분한 모습을 보니
'내가 이곳에 들어와 자리에 앉은 것이
심하게 잘못되었다."는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저 잠간만이요. 주여사님! 박전무.
그리고 맹여사 당신!
이 자리에 들어오자마자 제가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저도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나도 할 말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