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작과 끝 매듭
만수는 이 세상을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순간에 대한 것은 오직 어머니의 고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신기한 것은 어머니가 만나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내가 만수를 낳았을 때, 진통을 얼마나 오래했는 줄 아세요? 죽는 줄 알았어요. 무려 열세시간동안...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인간 낚시갔다가 오지 않았어요. 저 혼자.. 아이구 그 때 생각만해도..."
"내가 저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고 말도 하지 말아요. 대 낮이었는데 하늘이 캄캄했었다니까요? 그런데 그인간, 복도에서 게임에 푹 빠져있었대요. 나 혼자 이 생과 저 생을 오고 갔었지요. 지금 저 인간 얼굴보면 그 때가 떠올라서.. "
이 외에도 여러 이야기가 있다. 내가 들은 것만 해도.
"어떤 것이 사실(fact)일까?"
무엇보다 공통된 나의 출생스토리의 핵심이 있다. 내가 엄청나게 오랫동안 울었다는 사실이다.
이 또한 내가 확인한 것도 아니고 어머니의 입술에서만 뱉어진 것이기에 사실검증은 어렵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나는 왜 그리 오랫동안 울었을까? 자궁(子宮)을 떠난 것이 슬퍼서였을까?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 속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대가 부풀어 터진 희열 때문일까?" 아직 그 비밀은 파헤치지 못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어머니도 오열(嗚咽)하듯이 절규했다고 한다. 이는 순전히 아버지만의 의견이고 어머니는 한사코 그런 일은 없었다고 강하게 부정하니 말이다. 두 사람 중 한 분이 그리 말했다면 없는 일이라고 간주할 수 없겠지? 아버지 생각으로는 어머니가 딸을 그리 윈했는데 아들인 내가 태어나서 그리 슬피 울었다는 것인데. 이 또한 확인하기 어렵다. 어머니가 나를 홀대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또한 내가 다른 여성을 어머니라 부르며 살아온 적이 없이 우리 어머니 품에서만 양육을 받았기에 비교대상이 없으므로 그저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하여튼 나는 눈물과 아픔 그리고 오열 가운데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후로 만수는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무려 육십년을. 돌이켜보면 웃었던 일은 개그나 코미디물을 보고 터져나오는 웃음소리를 참지 못한 때를 제외하고는 몆차례되지 않았다. 대신에 억누를 수 없는 눈물,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경험한 때는 두손가락을 여러번 흔들어도 부족해 보인다. 그러다보니 인생은 웃을 때보다 눈물을 흘릴 때가 상대적으로 훨씬 더 많은 것 같았다. 만수는 "내 인생만 그러한가?"하고 반문(反問)해본다. 하지만 만수는 "인생을 노래하는 대중가요가사를 봐도 온통 이별과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은 아쉬움에 대한 슬픈 가사가 대부분이야.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내용에서도 웃을 일은 거의 없었지."라고 생각한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 목포의 눈물, 대전발 0시 50분을 비롯해서 패티김의 이별, 혜은이의 이별의 종점, 잊게해 주오 뿐인가? 이무진의 에피소드, 김범수의 하루, 박효신의 LOST, 아이유의 마침표 등 거의 대부분이 이별과 눈물이지"
만수는 만남보다 이별을 생각하고 노래할 뿐 아니라 수많은 문학작품, 영화를 포함한 예술작품이 그러한 것은 바로 인생이 눈물과 이별. 슬픔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라는 자신만의 결말을 매듭짓는다.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과거를 회상하는데, 문자 하나가 손을 부르르 떨게 한다. 바쁘게 핸드폰을 열어보니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다. "그래 이제 시작이구나!" 지난 주에 회사직원 부모상으로 지방을 다녀왔는데, 이제는 친구차례가 되었다. "머지않아 우리 부모님과 장인장모님도..." 마치 까뮈의 "이방인"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냉랭한 표정으로 찾아가는 청년 뫼르소의 모습을 만수는 자신에게서 발견한다.
만수는 아내에게 연락을 한다. "여보. 나 ♡♡알지? 아버님 돌아가셨다고 하네. 문상 다녀올게요." 만수는 KTX에 몸을 싣고 천안으로 달린다. 차창(車窓)에 어스름히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잠시 눈을 감는다. "언제일지 모르는데.. 나도 곧 그날을 맞이할 텐데." 연애시절부터 첫째 둘째 아이를 낳고. 아내를 부둥켜안고 울고 웃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첫째, 둘째를 낳았을 때 아내의 손에 머리를 잡혀 비명을 질렀던 순간이 선명하게 떠올라 만수는 입술을 벌려 웃다가 하마터면 크게 소리내어 웃을 뻔 했다. 큰 애가 작은 애와 크게 다투다가 화해시키는 방법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작은 방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언제 우리가 다투었냐는 식으로 즐겁게 놀고 있는-를 들으며 다시금 새롭게 당황했던 우리 부부의 표정. 그때를 생각만해도 우리부부는 초보였음을 회고하면서 만수는 차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역사이름과 어우러진 풍경을 응시한다.
드디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구십이 다된 어르신의 장례. 호상인데도 여기저기 곡(哭)하는 소리에 분위기가 무겁다. 만수가 문상을 위해 들어가자 소리내어 곡을 하던 상주들이 만수를 보고는 곡을 멈추고 자리에 선다. ♤♤는 먄수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안내하며 아버지가 호흡을 거두기까지의 과정을 서사시를 읊듯이 녹음기가 재생하듯이 주절거린다. 만수는 웃어야되는지 슬픈 표정을 지어야하는지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다가 국에 밥을 말아먹고는 서둘러 천안아산역으로 발을 옮긴다.
이미 해는 서쪽으로 넘어간 지 오래. 둥근 달이 환하게 역사를 비추고 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천안으로 내려갈 때와 달리 밝은 낯빛이 되어 잠을 청한다. 약40분 정도 지났을까? 서울역은 전등불빛으로 환하다. 만수는 친구네 상주들의 곡소리를 들으며 "인생의 마지막도 눈물로 가득 메워지는구나"라고 짐작한다. "그래도 호상(好喪)인데 그 곡소리는 슬픈 것일까 시원함일까? "
만수는 눈물로 태어나고 눈물로 떠나는 생을 생각한다. "태어날 때 눈물은 분명 기쁨과 희열(喜悅)을 의미하고 떠날 때 눈물은 슬픔과 아쉬움 그리고 시원섭섭함을 의미하겠지?"
만수의 하루는 길었다.
"오늘도 이렇게 떠나는구나. 떠나보내는 나. 떠나는 나를 어떤 눈물로 맞이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