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을 통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신다.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마태복음에서는
16:21, 17:22~23, 20:17~19을 통해서
이미 세번씩이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다.
그리고 20-25장을 통해
세상의 심판에 대하여
비유로 반복해서 가르치신다.
그래서 26장에서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As you know)"라고 하시면서
네번째 재확인하신다.
어느 누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와 같이
반복적으로 알려주는가?
예수님과 동행했던 제자들
그 중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정도는
이 사실에 대하여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를 기정사실화 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한센인 시몬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한 여인(A Woman)"이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는다.
그 여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준비하는 자가
적어도 남자들로 이루어진 제자들 가운에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남녀차별이 극도로 심한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장례라는 엄청난 일을
이름도 알려지지 않는
"한 여인
(막14:8은 한 여인,
요12:3에서는 마리아가 나드 한 근)" 을
통해서 준비하신다.
그러나 이 조차도
요한복음에서는 "가룟유다"가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라고 묘사한다.
"왜 이 비싼 기름을 허비하느냐?"
이들은
경제적인 비용을 따져 여인의 행동을
"낭비( this waste)"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너무 극명하게 다르다.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여인의 행동과
이를 "낭비/허비"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각은
너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네번씩이나 들었어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과
이 말씀을 듣지 않고도 준비하는 여인.
이 사례를 살펴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나의 죽음
(분명히 조만간 이 땅을 떠날 때가
곧 다가오리라)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가?
주님을 만날 그 날을 위하여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 땅에서의 나의 마지막을
"메멘토 모리(MementoMori)"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준비하는가?
여전히 죽지 않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 같이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한 여인"을 준비하셨다.
성서는 남자/여자를 중심으로 보면
남자의 역사인 것 같지만,
하나님은 여성을 통해
결정적으로 사역을 진행하신다.
아담이 표면에 등장하지만,
선악과는 하와가 먼저 먹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은 남자들일 찐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먼저 알게 된 사람은 마리아 였다.
후에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목도한 사람들도
여성이었다.
하나님은
여성들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오늘 남성 중심의 장로/목사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인류역사에 있어서
여성을 통해 생명을 얻지 않은 존재가
누가 있을까?
여성의 품이 아니고
사랑을 배운 남자
아니 인간이
어디에 있는가?
이 중요한 사실을
역사는 조용히 외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도
특히 여성을 통해
일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