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성육신의 의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여

하나님은 성도의 영혼을 보존하사 구원하신다

"Those who love the Lord!

He guards the lives of his faithful ones and delivers them)"


신실한 자(하나님을 따르는 자)를 보호하신다
신실한 자,

즉 충성스러운 자, 믿음이 가득한 자.
이를 개역개정에서는

"성도의 영혼"이라고 번역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악을 미워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악을 쫓는 일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마땅히 악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악인의 지혜, 오만한 자의 꾀,

죄인의 길에 들어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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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단 하나,

"눈 앞의 이익, 현실의 평안,

나만의 편리"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죽음의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불편함이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고난의 길이다.
영원을 사랑하기에 이 길을 걷는다.
영혼을 사랑하기에 불편함의 길을 밟는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의인의 죽음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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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편리함(convenience)만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

성육신(Incarnation)의 길은

전능(Omnipotent)의 자리에서 내려와

무능(Powerless)의 자리로 내려오는 것이다.

성육신(Incarnation)의 걸음은

무소부재(Omnipresent)의 자리에서 내려와

유한(finite)의 걸음을 걷는 것이다.

성육신(Incarnation)의 걸음은

전지(Omniscient)의 자리에서 내려와

십자가와 사랑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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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Incarnation)의 걸음은

붉은 색의 카펫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나의 것을 내어 주는 발걸음이다.

성육신(Incarnation)의 자리는

만인이 우러러 보는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만인이 차마 눈을 뜨고 쳐다볼 수 없는

십자가 위의 치욕의 자리이다.

성육신(Incarnation)의 현실은

오늘 난방이 잘 되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냄새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과 함께

"술을 좋아하고 죄인의 친구"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삶을 나누는 것이다.

성육신(Incarnation)의 자리는

썩어지는 육신을 치장하고 아름답게 가꾸며

그것으로 자신을 자랑하거나

누군가는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영혼을 존중하며

그것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자리이다.

성육신(Incarnation)의 자리는

내가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끝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는 자리이다.


그 자리에 내가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