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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루(Habiru)"입장에서 읽는 출애급기(4)

도망자 살인자 야인(野人)에서 지도자로 변한 모세

미디안 광야로 모세는 피신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드로란 분이 모세를 받아주었다.

뿐만아니라 그의 딸과 결혼까지 하고 살았다.


어느덧

모세는 80세가 되었다.


40년간 하비루의 삶에는 더 심각한 고초가 가중되었다.

파라오는 우리 하비루의 능력을 과신(過信)하고 있었다.

재료도 제공하지 않은 채 결과를 요구했다.

진흙과 지푸라기도 없이 벽돌을 쌓으라고 하고

제대로 된 음식도 주지 않으면서 과도한 노동력을 강요했다.

매일 하비루들의 귀에는 신음소리가 들리고, 절규하며  

비명을 지르다가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파라오에게 우리는 생명이나  인격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사실 이러한 처사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늘 그래왔으니까.

하비루에게 생각한다는 능력조차 인정되지 않았으니까.


80세가 된 모세는 양치기 즉 목동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생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모세에 의하면 우리 조상의 신 즉 YHWH를 만났다는 것이다.

단지 만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집트에 거주하는 하비루를 이집트로 부터 이끌어 내라는 명령을 야훼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모세는 솔직한 사람이다.

"나는 그럴만한 재목이 되지않는다."고 신에게 강변했다.

그도 그럴것이 비록 오래 전 일이지만

모세는 살인자 도망자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비루와 어떤 연관도 맺은 적도 없었다.


가혹하게 고통을 겪는 현장에서 함께 했던 적도 없었다.

하비루의 일원으로서 공감의 끈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모세가 하비루 앞에 나설 수 있었겠는가?

어림 반푼도 없는 일이다.


모세의 나이는 80세.

인생의 겨울에 들어 서 있다.

이제 마지막 정리를 해야 할 나이이다.

무엇인가 새롭게 도전할 시기가 아니라 그동안의 삶을 잘 마무리 할 때이다.

따라서 80이란 나이는 무엇인가를 거절하거나 거부하기에 충분한 나이였다.


이러한 모세를 설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야훼는 끈질기게 모세를 설득했다

모세는 신이 보여주는 기적을 보면서도 거듭해서 신의 부탁을 거절했다.

결국 "나는 언어 장애가 있습니다."라는 말로 신의 명령을 수행하기에 자신은 부적합 사람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모세의 자기변호보다 야훼의 집념이 더  강했다.

"누가 말을 못하는 사람, 시력이 약한 사람, 잘 걸을 수 없는 사람을 만들었는가?

 바로 내가 그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

 모세 너는 나이를 거론하지 말라. 언어구사능력이 약하다고 주장하지 말라.

 모세 너 자신보다 너를 만든 내가 너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바로 80이 되고, 언어능력이 약한 모세, 

 도망자이며 살인자, 방랑자인 모세를 

 내가 필요로 한다. 

 내가 명령한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자는 

 바로 지금의 모세이다."


야훼는 40대의 열정적이고 역동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해 낼 것 같은 모세를 선택하지 않았다.

사실 모세는 40세에 살인자, 도망자, 방황자로 전화된 삶을 살았다.

이제 모세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지금 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거절했던 것은

모세가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반항이었다.


이제 모세는 신의 명령대로 전적인 순종하는 자가 되어

하비루 앞에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파라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도자없이 살아온 사람들, 하비루.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400년 이상 지내온 하비루.

그들 앞에서 "나는 신이 보낸 너희 지도자"라고 외치며 나아가야 한다.

과연 하비루는 이러한 모세를 지도자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비루는 이런 모세를 전적으로 따르는 팔로워(Follower)가 될 것인가?


게다가 파라오는 모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갑자기 도망쳐 사라졌던 자가 80이 되어 자칭 지도자가 되어 나타난 모세를.

게다가 이집트의 수많은 공사를 감당해 왔던 하비루를 

어달라는 모세의 부탁에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게다가 자신을 신으로 선포한 파라오가 

또다른 신 야훼의 이름으로 다가온 모세를 인정하겠는가?


하나부터 열가지 용인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다.

하비루에게 뿐 아니라 파라오에게 까지.


그러나 모세는 이제 나아가야 한다.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야훼 신의 권위로...


자신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반대를  

모세는 직면해야 한다.


모세 자신보다

파라오 보다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야 할 하비루, 

우리에게  모세는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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