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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다 그런 줄 알았어요

by 류영창

“엄마는 다 그런 줄 알았어요.”

대한건설진흥회

사무총장 류 영창

(E-mail ID : ycryu1@daum.net)

□ 엄마는 귤 같은 신 과일은 싫어하는 줄 알았다.

초등학교 1~2 학년 정도일 때 엄마는 필자를 용문시장에 자주 데려가셨다.

시장에 데려간 아들에게 귤(당시에는 사과 5개 정도 가격) 1개를 사 주고, 먹으라고 하시면서, 본인은 한쪽만 드시면서, "엄마는 신 것 못 먹어" 하셨다. 그때는 그대로 믿었다. 어머니는 비싼 귤을 사가면 가족들이 나누어 먹을 수밖에 없어서 필자에게는 차례가 오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귤을 사 주었던 것 같다.


□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의 집에는 항상 군식구가 많은 줄 알았다.

도원동 고지대 집은 방이 3개 있었지만, 전용면적 15평 정도 되는 한옥으로써, 버스정거장까지 걸어서 20분, 자동차 길까지 10분 걸려 언덕 2개를 오르내려야 하는 곳이며, 수거식 화장실 1개가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서울 유학 온 부친에게 시골(충남 서산)에서 올라오면 많은 분들이 우리 집에 묶었다. 이모부, 외삼촌, 친삼촌, 아빠 친구 등 어렸을 때 항상 식구가 10명 안팎이었다. 지금도 의문점은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좁은 집에서 어떻게 2남 4녀 를 만드시고 키웠을까? ”이다.


□ 어느 집이든 여름철 성수기에는 수돗물이 안 나오는 줄 알았다.

필자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주한 집의 주소는 ‘서울시 용산구 도원동 15번 자 84호’이다. 지금은 재건축이 되어 집의 흔적도 없고 아파트가 건립되었다.

집에 수도꼭지는 있지만, 여름철 수돗물을 많이 사용할 때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300m 정도 떨어진 특선(特線?) 수도집에서 구입하여 집안의 청년이 물지게로 지고 와야 한다. 오죽하면 물지게 지던 외삼촌은 “누나집에서 물지게 지느라 키가 안 컸어요”라고 했을 정도이다. 필자가 서울 공대 토목공학과에 입학하여 상하수도를 전공하여 공학박사가 되고, 상하수도기술사를 획득한 것은 잠재의식 속에 물 없는 한을 풀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 엄마는 항상 아프고, 꾀병이 많은 줄 알았다.

◉ 소화불량 때문에 항상 트림을 하던 모친

부친이 경찰공무원으로서, 긴장 속에 살다 보니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위장병이 생긴 것으로 생각됨. 그 당시에는 소화가 잘 안 되면, 보통 소화제를 복용했다. 이른바, 제산제, 위산억제제 등을 복용하셨을 것이다. 위장병약을 장복(長服)하면 위산 분비가 억제되어 소화가 더욱 되지 않았을 것임.

◉ 고혈압, 불면증, 부정맥으로 시달리던 모친

혈압은 “온몸 구석구석까지 피를 공급해 주기 위해서 인체의 자율신경이 만들어 주는 작용이다.”라는 것이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라는 책의 일본인 저자 마쓰모토 미쓰마사의 주장이다.

당시에는 고혈압 환자는 의사의 처방에 따른 혈압약을 복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평생 혈압약을 복용하다가 혈압 조절이 잘 되지 않으니, 혈전용해제 ‘와파린’을 복용했다. ‘와파린’ 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가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하는 작용을 하는 원인 물질이다. 뇌출혈이 발생한 모친의 뇌 MRI 사진을 보니, 출혈이 뇌전체에 퍼진 것을 보았는데,....... 이것이 와파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의 대학시절, 모친이 “부정맥이 생겨서 괴롭다.” 고 하여 어렵게 수속하여 종합병원에 모시고 가서 부정맥 검사를 할 때는 부정맥 증상이 없어진다. 어떤 때는 심장 부하 검사를 실시하는데.... ‘트래드 밀’ 같은 기계 위에서 달리게 하면서 직원이 “못 참겠으면, 왼손을 들어요”라고 한다. 모친이 왼손을 들면, 해독약 주사를 하면서 검사는 실패로 끝나곤 했다.

당시. 철없던 필자는 "우리 모친은 꾀병이 심하다"라고 생각했다.

각종 약의 부작용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모친의 불면증은 혈압약의 부작용일 것이고, 불면증 약의 drug mugger(약이 영양분을 강탈하는 현상)가 멜라토닌이기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하면 깊은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에 평생 “리브리움”이라는 약을 복용하면서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혈압약의 부작용 때문에 부정맥이 발생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아울러 혈압약 복용으로 괄약근이 헐거워져서 역류성 식도염이 생긴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필자의 공부가 부족했던 것을 한탄한다.


□ 공직자는 모두 가난하게 사는 줄 알았다.

6·25 사변이 나던 해에 고려대 정치과 졸업반인 부친이 정부 시책에 따라 발족한 전투경찰대에 들어가서 경위(파출소장 급) 계급장을 달고 경찰 간부 생활을 시작했다. 공무원 모두가 박봉에 시달리던 때이지만, 부수입을 챙기는 공직자도 많았다고 들었지만, 청백리로 소문났던 부친 덕분에 가정 경제는 매우 어려웠다, 당시, 쌀 1말을 사 오면, 3일을 먹은 것으로 기억한다. 모친이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필자가 돕던 기억과 모친이 자살하려던 것을 막은 기억이 난다.

◉ 봉투 붙이기

어느 집에서 누런 펼친그림 봉투지와 밀가루를 공급받으면, 우리 가족은 상다리를 펴지 않고 마루 바닥에 펴놓은 상태의 둥근 상 위에서 펼친그림 봉투를 회전방향으로 돌린 여백에 밀가루로 만든 플을 큰 붓으로 칠한 후, 접어서 봉투를 만든 후에 그것을 광주리에 담아서 원청자에게 가져다준다. 모친이 한 광주리를 이고가도 얼마되지 않은 돈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 팬티에 ‘밴드형 고무줄’ 박기

동대문시장에 남성용 포플린 팬츠를 납품하는 옆 집 아줌마로부터 포플린 팬티와 밴드형 고무줄을 받아다가 재봉틀을 사용하여 밴드 고무줄을 부착하는 작업인데,....

이른바, 발틀(발로 구동시키는 재봉틀)이면 모친 혼자서 가능했지만, 우리 집에는 손틀(오른손으로 돌려서 구동시키는 재봉틀)밖에 없어서 보조자 없이는 작업을 할 수 없어서 필자가 그 역할을 했다. 팬티를 일정한 힘으로 당기던 필자가 잠깐 졸면 작업이 망쳐진다. 이어 모친이 손으로 잡고 ‘북~’ 뜯는 소리가 들리면서 혼나고, 꿀밤 한 대 맞았다.

◉ 복덕방의 문의 전화에 대한 반응

합정동으로 이사하려고 복덕방(지금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매물로 내놓았다. 복덕방에서 전화가 왔다. “수돗물은 나와요? 전기는 들어와요?” 하고 물었다. 이때, 화가 난 모친의 모습은 참혹했다. 장남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창피한 질문은 처음 받아 보았다. 자살하고 싶다.” 고 하며 통곡을 했다. 장남으로써 모친을 달래느라 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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