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워낙 딸이 없고,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었던 탓에, 차라리 추운 것보다 더운 것이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확히는 마흔이 지나면서 그 체질도 서서히 변해갔다. 한여름에도 보송보송하던 나는,
이젠 이마와 머리카락 경계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고, 얼굴에는 개기름이 흐른다.
외출할 땐 손수건이 필수가 되어버렸다. 변해버린 내 몸이 조금 낯설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편엔
여전히 여름을 향한 반가움과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피서다.
아이와 함께했던 여름 피서지였던 순천의 기억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15년 전, 순천으로 내려가 몇 년간 살았다. 그때 나는 pc방을 운영했고, 부모님은 아이를 돌봐주시기 위해
얼마 후 내려오셨다. 평일에는 가게에 묶여 있었지만, 주말이면 우리는 늘 가까운 계곡으로 향했다. 그 시절
처음으로 텐트를 샀었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계곡, 텐트를 들고 그곳으로 향했다.
'와, 덥다'를 외치다가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원해지던 기억. 한쪽엔 텐트를 치고,
아이는 물속으로 첨벙첨벙 놀기 바쁘고, 부모님은 다슬기 채집 도구를 들고 물가를 따라다니셨다. 그러고 있으면 동네 아이들과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 계곡은 활기를 띠었다.
어떤 이들은 계곡 자리 좁은 곳에 평상까지 펼쳐놓고 수시로 들락거렸는데, 가끔 솥을 가지고 와서 삼계탕을 펄펄 끓이곤 하셨다. 그 냄새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다. 먹어보진 못했지만, 상상만으로도 그 맛이 얼마나 좋을지는 추측할 수 있다.
아이가 여섯 살 무렵, 킥보드를 타다 굴러 심하게 다치는 바람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반창고와 붕대를 칭칭 감은 아이는 그래도 계곡에 가자고 졸랐었다. 상처가 물에 닿으면 안 된다고 하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튜브 위에 둥둥 떠 있으면 괜찮다고 서럽게 울먹이던 아이.
그날, 나는 아이를 조심조심 물 위에 띄워 끌었다. 아이의 웃음은 물결을 타고 내 마음속까지 번져 왔다.
그 순간, 여름이 얼마나 근사한 계절인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몇 년 후, 우린 순천을 떠났고, 아이가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 그 계곡을 다시 찾았었다. "아직 그대로네."
아이는 어린 시절 그곳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키가 훌쩍 커버리고, 생각도 커졌지만
그 계곡은 예전 그대로 남아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날의 웃음과 물소리는 아직 그대로지만, 어쩌면 변한 건 우리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진짜 추억은 장소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곳에서 우리가 함께한 '순간'에 있다는 것을. 계절은 바뀌고, 삶은 달라져도 마음에 또렷이 남은 몇몇 여름 장면은 단지 물놀이가 아닌, 서로의 마음을 나눈 시간이었음을.
삶이 팍팍할수록, 그 계곡에서 웃던 아이의 얼굴, 그 옆에서 손을 잡고 있던 나, 그리고 묵묵히 다슬기를 잡던
부모님의 뒷모습까지 불쑥불쑥 떠오르곤 한다.
여행이란, 결국 우리의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작고 소중한 쉼표 하나를 모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고단한 하루의 끝에 그날의 여름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여름, 당신은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