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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Nov 30. 2022

하늘을 날고 싶었던 자동차

사양합니다


오악 오안~! 오악악 안돼~!


왼쪽 왼쪽~~ 응응



이 소리는 경기도 용인시 어느 한적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한 아낙이 중얼중얼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을 하는 소리입니다. ㅋㅋㅋ



 




나는 급발진이 무섭다.

전원일기에 나왔던 맛깔난 할머니 역의 대명사인 그분이 한 이야기가 떠올라서 더욱 그렇다. 자신이 운전대를 잡은 차의 급발진으로 인하여 가족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충격이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롯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사고가 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고 당시 핸들을 잡고 있었던 건 본인이고 그것은 자신이 차를 운전하다가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문장이 성립하므로 그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도 충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데 그 이야기를 꺼내는 당사자는 수년이 흘렀음에도 매우 고통스러운 듯 보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조심성이 참 많았다.

무얼 하든 조심조심 살살이 최우선인 차분한 생활이 먼저인 아이였다. 조심하면 좋을 줄만 알았건만 내 성격은 점점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급기야는 불안함을 잘 느끼는 성향으로 변해갔다.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멀쩡해 보이는 저 천장이 무너지면 어쩌지, 평화국면이라 쌀도 주고 돈도 주는 상황인데도 북한이 쳐들어오면 어쩌지, 나는 멀쩡히 인도를 다니지만 차가 내게 돌진해 오면 어쩌지, 코드를 꽂아 놓은 전자제품이 내가 없는 사이 불이 나면 어쩌지... 오만 잡다한 걱정과 고민거리를 한 아름 껴안고 다니게 이르렀던 것이다.


이미 차고 넘치는 불안감 속에 사는 내가 하필 그 급발진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내가 탄 차도 급발진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나? 재수 없으면 비운의 주인공이 되는 거지 뭐, 하는 생각에 죽더라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순간 시동을 걸 때는 항상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시동을 거는 습관이 생겼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사실 

액셀과 브레이크가 매우 헷갈리기 때문이다. @.@

계속 주행 중에는 괜찮다가 맨 처음 시동 걸 때 그렇게 헷갈린다. 모든 일은 맨 처음이 어렵고 헷갈리는 것인지 매일매일이 참 새롭고 헷갈린다. 항상 아침에 시동을 걸 때마다 내 발은 액셀과 브레이크 사이에서 갈팡질팡 왔다 갔다 고민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으악새도 아니고 오악새를 연상하여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오악 오악(오른쪽은 으악 소리가 나는 거야! 으악 죽는 거야!) 오액(오른쪽 액셀)~

오른쪽 액셀 오른쪽은 안 돼~

왼브(왼쪽 브레이크) 왼쪽은 부드럽게~ 왼쪽은 다 돼~ ㅡ.ㅡ


아침 등굣길 두 아이를 태우고서는 지각할까 그 바쁜 시간에도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문지르며 주문을 외우 혼자 중얼중얼 오악 오악 이러면서 시동을 거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중얼거림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운전연수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나의 웃기고도 무서운 이야기...






아기가 갓 태어나 언제 어느 때나 항상 아기와 함께 하여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던 어느 날.

사람 나중 일은 모르니 면허를 따긴 따 놓았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무서움을 많이 느끼는 나는 쉽사리 차를 몰고 다닐 수가 없었고 면허증은 숲 속의 잠자는 공주라도 된 양 책상 서랍에서 언제 깰지 모를 꿀잠만 몇 년을 내리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커갈수록 차의 필요성이 너무나 커져만 갔다.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자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남편에게 너무 불편하다며 자꾸 한탄을 하게 됐다. 나의 한풀이를 잠자코 듣고 있던 남편은 바로 연수 시작하는 게 좋겠다며 연수 전화번호를 어디서 뚝딱뚝딱 알아보더니 곧바로 전화번호를 내게 건넸다. 등 떠밀리듯 전화를 걸어


"어... 저... 운전연수받고 싶은데요..." 했더니

"네, 내일부터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뚜둥...

'저기요? 제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요... 그렇게 빨리 일정을 잡으시면 겁이 나서요...' 하고 싶지만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내 안의 나는 이미 내일 오후 2시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은 뒤였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도 못하고 급하게 시작한 운전연수.

유모차나 타는 아이를 데리고 어디 세계여행을 갈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마트 정도이니 연수 선생님께 "가까운 마트 정도만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돼요~" 라며 우리 빨리 끝내고 빠이빠이 하자는 의견을 내비쳤다. 우선은 지하주차장만 뱅글뱅글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돌수록 조금씩 자신감이 붙는다. 최소한 주차되어 있던 어떤 차와도 꽁 하고 부딪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연수쌤이 제안을 한다.


"자~ 이제 밖으로 나가 볼까요~"


 더 나아가 지상 주차장.

어둡고 밝은 명암의 차이뿐인데 무슨 어마어마한 큰 변화가 있는 거 마냥 괜스레 떨린다. 그러나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 것인지 몇 바퀴 돌았더니 놀이동산에서 범퍼카를 탄 듯 재미가 났다.


"마트 가봅시다~"

"네?? 벌써요??"


가랬으니 간다만 덜덜덜 너무나 떨렸다. 운전학원에서는 운전 가르치는 선생님 발 밑에 비상 브레이크 페달이 있어서 혹시나 연습생이 실수할 경우 브레이크를 대신 밟고 대처라도 해주지만, 나는 자차로 연습하는 중이고 자차에 여분의 브레이크 페달이 있을 리 없으니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며 운전을 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 했으니 정신을 가다듬고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가본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제법 큰 저마트는 6층까지 있었다. 옥상은 6층이었는데 어찌어찌 순탄하게 마트 6층까지 도착. 제법 심한 경사를 거스르며 올라가서는 아까 주차장에서 연습한 것처럼 한 바퀴를 실실 돌아본다. 좀 연습했다고 처음보다는 봐줄 만하다. 그런데 잠깐 내 차 앞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바람에 브레이크를 밟고 멈췄다. 사람이 지나갔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고 갑자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액셀과 브레이크 위치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헷갈릴 이유가 없다. 그냥 밟고 있는 브레이크만 살포시 떼면 되는 것이었다. 왜 그랬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냥 오른쪽 액셀을 슝 밟고 만 것이다.  


와...


차는 원래 빠른 거지만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심지어 6층은 옥상이니, 벽을 뚫고 맞은편 건물 옥상에 착지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그 짧은 1초 동안 스쳐 지나갔다. 생존 본능으로 내 발은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기에 망정이지 그냥 넋 놓고 있었다간 그날 나는 저승사자와 하이파이브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저승사자를 만나는 길은 혼자는 외로우니 옆에 타고 계셨던 연수쌤과 함께였겠지. 또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불안함에 아마 황천길 가는 길은 나 대신 운전하셨을 것이다.




연수쌤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식은땀을 흘리며 나에게 한마디 하셨다.


"우리 차가 하늘을 날 뻔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까지 이런 초보는 없었다.

이것은 엑셀인가 브레이크인가.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으로 들어오려는데 심상치 않은 문구가 자꾸 나를 불러 물끄러미 쳐다보게 되었다. 이 문구가 붙어 있는 자동차를 보고 난 핸드폰의 카메라를 아니 작동시킬 수가 없었다. 이런 문구는  보이는 대로 바로바로 찍어줘야 하는 것이었다. 내 손안에 마이마이를 넘어 내 손안에 무려 카메라가 있는데 못 찍을 일이 무엇인가.


이것을 찍은 이유는 내가 바로 저 문구의 장본인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성매직펜과 스티커를 하나 사서 들어가야겠다. 그리고 내일 아침엔 운전석에서 잘 보이도록 액셀과 브레이크 스티커를 예쁘게 붙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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