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Dec 06. 2022

나는 왜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오들오들 떨었을까

안에 있다면 나가주세요... 제발...

바쁜 아침시간이다. 겨울 방학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 옷을 춥지 않게 단단히 여며주고 차에 태워 학교에 보내주고 돌아와서는...


너무 무서운 것을 보고 말았다.


우리 집 현관문이 열려 있는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도어락을 사용하므로 비번만 띡띡띡띡 누르면 되는 편리함을 누리고 살았건만 가끔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아직 조심성이 없는 아이들이 "놀다 올게요~~" 하고 나갈 때 문이 저절로 닫힌다는 걸 알고는 도어락을 과신한다는 점이다. 편하다는 장점이 있기는 한데 문이 좀 천천히 닫힐 때에는 도어락의 걸쇠가 먼저 나와버려서 문이 스르륵 닫히다 말고는 걸쇠 때문에 문이 빼꼼 열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단점도 있다. 편하자고 설치한 것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다.


가끔 아이들이 부주의하게 문을 제대로 닫았는지 확인도 않고 천방지축 놀러 나갔을 경우엔 내가 집 안에 있었으니 에휴... 한숨을 섞어 문을 안에서 제대로 닫고는 했었다. 그리고 다 놀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문단속 제대로 해야 한다고, 문을 그리 열고 다니다가는 도둑이 들어올 수도 있다고 그렇게 타이르곤 했는데... 그건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 나는 어른이다. 문단속을 누가 가르쳐야만 아는 나이가 아닌, 내가 솔선수범하여야 하는...


아까 분명 집에서 나갈 때 신발 신는 순서가 큰 아이, 작은 아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이런 순서로 차례차례 채비하고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문을 여닫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러니까 내가 제일 마지막이면 문단속이 저 지경 일리가 없는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아이들이 마지막이었다면 '으휴... 또 이래 놨어... 언제 철들래.' 할 텐데... 내가? 내가 문단속을 저렇게 하고 아까 나갔다고? 믿을 수가 없다. 어젯밤 늦게 새벽에 잠이 들어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라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아닌지를 확인도 못하고 엘리베이터를 탄 건가?


찝찝하고 불길한 마음을 안고 신발을 벗고 우선 들어오긴 했는데 방으로 들어갈 수도, 손을 씻으러 화장실을 갈 수도, 무엇을 하기도 불안하다. 멍하니 서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혹시 내 불안한 예상대로 살짝 열린 문을 열고 들어와 도둑이나 강도가 집안에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니 섣불리 마구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만일 내가 마동석쯤 된다면 벌컥벌컥 문을 열어서 마주치는 그놈에게 원펀치 쓰리 강냉이를 날리면 되겠다만... 나는 무술이라고는 1도 모르는 여리디 여린 한낱 아낙이 아니던가...


어쩌지... 이를 어쩌지...


안 되겠다. 나갈 시간을 주자. 안에 누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나갈 시간을 주자.

괜히 맞닥뜨려 좋을 게 없다. '피하자'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나가면 나의 생각을 알 리가 없으니 내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도둑님, 잠깐 나와 보세요. 제가 나가는 척할 테니, 그때를 틈타 얼른 나가시면 됩니다. 알겠죠?" 하고 대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 전화를 걸자. 그런데 어디에 전화하지? 신랑하고 나는 전화통화를 거의 안 한다. 정말 특이한 사항이 있을 때만 전화를 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는 말이 100퍼센트 맞다고 생각하는 그와 나라서, 또 저녁 6시만 되면 칼퇴근을 하고 귀가를 하는 사람이라서 전화를 걸어 뭐 특이하게 이야기할 게 없기도 한 게 그 이유다. 그런데 이런 뜬금포로 전화를 한다고?? 어쩌지... 어쩌지?


전화기를 꺼내 독백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신랑한테 전화를 거는 척 연기를 한다.


"여보세요? (1초 쉬고)

 응~ 눈이 많이 오네? (3초 쉬고)

 아침에 조심해서 잘 출근했어?

 (혼자서 하는 연기가 오늘은 영 시원치가 않다. 빨리 목적만 말하고 애초 걸지도 않은 전화지만 전화를 얼른 끊어야겠다.)

 나? 으응. 애들은 학교 잘 갔지. 응

 근데 차에 뭘 놓고 와서 다시 내려가야 해. 아 귀찮아. 응. 금방 나갔다 와야지."


그리고는 다시 신발을 주섬주섬 신고 밖을 나갔다.

현관을 나서고 같은 층이지만 모퉁이를 돌아야 나오는 1호 집 근처에 몸을 피했다.

"나갔다 와야지"에 좀 더 큰 소리로 악센트를 넣는 건데 도둑이 잘 들었을까 걱정이 된다. 10분만 주면 되겠지. 만일 안에 있다면 상황 파악하고 얼른 뛰어나오겠지? 날은 또 왜 이리 추운 건지. 추위를 잊어 보려 핸드폰으로 브런치스토리를 열어 이 글, 저 글 열심히 읽으며 시간을 죽인다. 평소 10분은 아무것도 아니더만 오늘은 왜 이리 시간이 더디 가는지... 빼꼼 고개를 내밀어 우리 집 현관문을 향해 보는데 아무 기척이 없다.


'안에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는데 내가 괜한 오버인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안에서 사람이 나와도 무섭고

안에서 사람이 안 나와도 무섭다.

무서워 죽겠다.


시간을 겨우 7분을 넘기고서야 병아리 눈물만큼 용기가 난다.

'그래,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나왔겠지. 지금까지 안 나왔다는 건 안에 아무도 안 들어갔다는 거야.'


용기를 내어 다시 현관문을 연다. 삑삑삑삑 띠리릭.


무서워 돌아가실 것 같지만 이제 한 군데 한 군데 확인해야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야구방망이라도 좀 미리 구비해 둘 걸 그랬나... 방문을 하나씩 하나씩 여는데 심장이 쿵쿵쿵쿵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화장실 문을 연다. 45도 각만 열면 나머지 45도 각 뒤에 이 놈이 숨을 수 있으니 숨을 공간 없이 확~! 다 제쳐버린다. 휴우. 없다. 그리고 베란다로 가서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없다. 다행이다.


예전에 보았던 공효진 주연 영화 "도어락"이 자꾸만 생각난다. 공효진이 출근한 틈에 집에 들어온 정체 모를 남자가 주인 없는 틈에 밥도 해 먹고 TV도 보고 급기야 여유만만 샤워도 한다. 충격과 공포에 치를 떨었는데 그 비슷한 상황이 나에게 벌어졌다는 게 너무도 끔찍하다.


어찌 되었든 난 최선을 다했고 이렇게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무서움에 바들바들 떨면서...


쿵!


헉!


갑자기 안방 쪽에서 소리가 났다. 분명히 아까 다 확인했는데...


히잉...ㅠ.ㅠ




침대 밑에 숨은 범인이 공효진 다리를 쳐다보는 장면...   출처. 얼굴찌푸리지말아요~ 블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