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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Dec 08. 2022

짜장라면, 너 참 친절하구나!

어차피 버릴 거라면

나는 등산을 이해할 수 없다.

세모 모양을 닮은 산을 힘들게 헉헉대고 올라갔다가 정상에서 야호 한 번 외치고, 돌아오는 메아리를 귀 기울여 감상 한 번 하고는 가져간 김밥을 먹고 허기를 채운 후, 오이로 부족해진 수분 보충을 하고 다시 경사진 곳을 후들거리는 다리로 덜덜덜 떨며 내려오는 그 등산 말이다. 중간에 올라가면서 예쁜 꽃으로 눈호강도 하고 듬직한 나무에 기대 등의 대화를 나누고, 나누는 김에 서로 맞닿은 등을 퉁퉁 쳐가며 교감도 하고, 가끔 만나는 청설모와 다람쥐를 놀라게 해 주기도 하는 등 좋은 점들도 더러 있긴 한데...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올라갔으면 거기서 쫌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사는 건 좀 오버고 거기서 좀 여유를 만끽하다 내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이건 뭐 해가 질까 부지런히 올라갔다가 이곳은 정상입니다 하고 세워진 간판 또는 비석들과 사진 한 방 찍고는 미련 없이 뒤돌아 내려온다.


아니!!!

도로 내려올 거 도대체 왜 올라가는 건가???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화가가 연필로 소묘를 열심히 공들여 그려놓고 싸인까지 마친 후 내가 나에게 참 잘했어요~ 박수 세 번 짝짝짝 치고선 큼지막한 미술용 점보 지우개를 들고선 완성된 그림을 거침없이 지우는 거랑 뭐가 다른가 말이다.

소설가가 애써 꿈까지 동원해 가며 있는 상상, 없는 상상 짜내어 스토리를 만들고 낑낑대며 겨우 마무리를 완성하고 에필로그까지 보태고 마지막 -끝-을 써놓고는! 감동의 눈물이 채 마르기 전 컴퓨터 화면을 저장도 않고 노란 손수건을 흔들며 전원을 끄는 거랑 뭐가 다른 건지??


등산의 재미란 걸 1도 모르는 나에게 있어 등산은 이해 안 가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게 치자면

밥 먹으면 어차피 화장실 가서 밖으로 배출되는데 뭣하러 먹느냐 그럴 수도 있다.

수업을 들어봤자 오른쪽 귀로 들어온 공부가 왼쪽 귀로 빠져나갈 텐데 공부는 왜 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어봤자 도로 자라날 텐데??

손톱 깎아봤자 다시 손톱이 자라날 텐데??

......

와아......

내가 오늘 또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자꾸 글을 쓰면 쓸수록 등산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101마리 달마시안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가짓수가 튀어나올 판이다. 탈룰라급 태세 전환을 하도록 한다.


등산 애호가 여러분~ 제가 엄청난 실수를 하였습니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반드시 등산은 끊지 말고 다니셔야 해요~ 여러부운~~~




어찌 되었든 본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목에 나온 바와 같이 등산은 아니다.


바로바로 짜장라면에 대한 이야기인데

최근에 짜장라면을 먹다가 아주 참신한 라면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짜장라면을 끓일 때 살짝 긴장을 하기 마련인데 이유는 조리법에 다음과 같은 안내가 있기 때문이다.



1) 물 600ml(3컵 정도)를 끓인 후 면과 후레이크를 넣고 5분 더 끓입니다.

2) 물 8스푼 정도만 남기고 따라 버린 후 과립 수프와 올리브 조미유를 잘 비벼 드시면 됩니다.

3) 기호에 따라 오이, 양파 등 생야채와 곁들여 드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물 600ml 그 정도야 일도 아니다. 우리에겐 계량컵이 있고 컵이 없으면 종이컵이 있고 어차피 따라 버릴 것을 다 알기 때문에 대충 철저하게 맞추고 타다다닥 불을 켠다. 하지만 바로 5분 후면 긴장의 시간이 다가온다.


물 8스푼 때문에 말이다.


그나마 8스푼은 양반이지, 내 기억으로는 7에서 8스푼인 것 같은데 언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6 숟갈도 아니고 9 숟갈도 아닌 애매모호 7~8 숟갈이란 말이다.

그럼 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아니 7 숟갈이면 7 숟갈이고 8 숟갈이면 8 숟갈이지 7에서 8은 무엇이냐 말이지. 어쩌라는 거야. 내 오른손과 왼손을 동시에 가위바위보를 시켜서 이기는 애 하고 싶은 대로 진행시켜? 아니면 공평하게 7.5 숟갈? 7과 2분의 1???

이거 뭐 실험실의 청개구리 아니 실험실의 짜장라면도 아니고 이런저런 고민을 또 너무 오래 하면 안 된다. 이미 정확한 5분 타이머에 맞춰 끓인 면이 불기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후다닥 젓가락으로 면발이 안 나오게 대충 막으면서 물을 버리기 시작하면 이건 7 숟갈 8 숟갈은 개뿔~! 한올의 면도 개수대로 빠지지 않게 지켜내는 것만 신경 쓰기도 바쁘다.


우여곡절 끝에 물을 얼추 따라버리고 나면 분말수프와 유성 수프를 잽싸게 넣어 약불 상태에서 휘이휘이 저어주어야 한다. 고기 모습을 한 콩고기가 제법 든 건더기 수프는 이미 끓고 있는 물에 아까 면과 함께 집어넣었었다. 물론 아까 물을 따라 버릴 때 너무나 아깝게도 물과 함께 몇 개 딸려 나가긴 했지만 약 80퍼센트는 살아남았음을 위안 삼는다.


그리고 라면에 어울릴만한 단무지가 있으면 딱이겠지만 집에서 평상시에 단무지가 있을 리 없으므로 대충 비슷한 총각김치 정도를 꺼내 밸런스를 맞춰 한 입 먹어본다.


하아...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레시피가 시킨 대로 모든 과정을 거쳤는데도 불구하고 지난주에 먹었던 짜장라면과 오늘 먹는 짜장라면의 맛은 다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따라 버린 "물의 양"이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고하니~

7 숟갈에서 8 숟갈 그것이 가장 포인트인데 물을 따라내 버릴 때 여러 제약들로 인하여 그 물의 양을 제대로 맞추기란 너무나 어렵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면 뭐 그까이꺼 대충 눈대중으로 해도 맛이 일품이겠지만 라면이라는 것 자체가 요리를 잘 못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쉽고 간단하게 조리해 먹으라고 만들어진 상품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7~8 숟갈이라니...

아~! 바뀌었다. 8스푼! 그런데 그거나 그거나 똑같다. 8스푼인 줄 어찌 알고 그만큼을 남기고 버리느냐 말이지. 이건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였던 것이다.

물을 좀 넉넉히 남겨두면 이것은 짜장인지, 국물 짜장인지 모를 시커먼 한강 위의 면인 듯하고, 물이 또 너무 적으면 입에 매끈하게 들어가는 맛이 없고 냄비까지 탈 지경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우유부단하게 이만큼? 아니 요만큼? 하고 갈팡질팡하다가는 면발이 다 불어 터지고... 누구는 그럴 것 없이 국자의 절반 양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하는데, 국자의 크기가 모두 일정하지도 않다. 하아... 갈수록 첩첩산중.


한데 웃긴 건 이 불편한 걸 아무도, 그 누구도 개선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엄마가 아침에 싸준 도시락 반찬에 대해 싸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히 먹을 일이지 어디 감히 반찬투정이냐 하는 것처럼. 물가가 엄청 올라 이젠 5천 원 주고도 못 사 먹는 짜장면을 이렇게 집에서 편하고 저렴하게 먹게 해 준 짜장라면 회사에게 매우 감사한 마음으로 맛나게 먹어오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그런데 어제~!

대단한 짜장라면을 발견하였다!!!


위에서 말한 대로 나중에 따라버릴 것을 대비하여 조금 넉넉히 물을 끓이는 흔한 짜장라면들 속에서! 보통 그 양은 600ml 정도 되는데 내가 무심코 장바구니에 담아온 이 짜장라면의 레시피는 물 양이 400ml였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그래 그것은 400ml가 분명했던 것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얼래? 그러고 나서 뒤이어 나온 레시피가 더 가관이다. 면이 냄비에 눌어붙지 않도록 잘 저어 주세요?? 이 짜장라면은 400ml의 물 양이 자기한테 적은 걸 이미 알고 있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찬찬히 읽어보는데 물을 어느 정도 남기고 따라 버리라는 안내가 없다. 오잉??? 물을 안 버리면 한강이 된 짜장라면 맛이 밍밍할 텐데??? 의아함이 생겼지만 레시피에 충실한 나는 그냥 하라는 대로 한다.


5분을 끓인 후 다른 짜장라면의 레시피에 나온 것과 유사하게 유성 수프와 분말수프를 넣어 휘휘 저어주는데 세상에~! 물이 딱 적당하다~!! 물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고 완전 적당 그 자체인 것이다. 세상에~!!!


나중에 따라 버릴 물이라면 애초에 넣지 않겠다 주의의 배려심 많은 짜장라면. 어차피 내려올 등산이면 올라가지도 않겠다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짜장라면!

맛도 한결같다. 버리는 물의 양이 들쭉날쭉하지 않으니 언니, 오빠, 동생, 할머니, 삼촌 누가 끓여도 같은 맛을 낼 수가 있다.


난 잠깐

초등학생 이후로 교회도 안 갔으면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이걸 만든 연구원들에게 말이다.


"어찌 요리 초보자의 안타까운 요리실력을 불쌍히 여기시어 애초에 물을 적당히 넣으사 끝까지 끓여도 절대 물이 부족하거나 물이 넘치거나 하지 않는 양을 맞추어 개발하게 되셨습니까? 누구십니까? 그분은? 누구시길래 이런 훌륭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신 겁니까? 물 양이 조금이라도 모자랐다면 면이 제대로 익지 않는 고난의 상황을 몇 번이나 극복하셨을까요?"



이용자들이 먹어보고서 다소 불편하다는 클레임이 많이 들어갔을까?

아닌데 이건 원래 그 브랜드가 아니라 다른 브랜드인데... 아무튼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골똘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배려한 흔적이 보이니 괜스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모든 일이든 다 그런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똑같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닌 유일하게 나만 생각하고 떠올려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걸 실전에 적용하고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또 단순히 머리가 좋기만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이건 어지간한 배려가 없으면 해내기 어려운 것!



주변을 잘 돌아보며 배려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작은 나의 힘이라도 두 팔 크게 벌려 배려를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끝.




그 짜장라면의 이름을

그 연구원의 노고와 배려를 위하여

온천하에 밝히고 싶지만

PPL 같은 느낌이 물씬 남으로

여기까지 하기로 한다.

궁금하신 분은 400ml를 기억하세요~~~~ ^^




출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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