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 집에 친척들이 오는 날이면 엄마 아빠는 친지들과 대동단결하여 나를 놀려먹는 걸 낙으로 삼으셨다.
특히 장난기 많은 이모는
"쟈는 누구 닮아서 언니를 저래 하나도 안 닮았노~
쟈 언니랑 동생은 엄마, 아빠 판박인데 쟈는 한 개도 안 닮았다~"
"아~ 쟈는 다리 밑에서 줏어왔다 아이가~"
"아~ 맞나~ 우짠지 닮은 데가 와그리 없노~~ 했다~"
울고 싶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니.
부산 사람들은 모이면 허구한 날 언성 높여 싸우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결코 자기네들은 싸우는 게 아니라 그저 대화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유독 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다들 조용~~ 하고 진지~~ 한 분위기를 한껏 조장한 후 근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기억한다. 그들의 대사를. 조사 하나 빠지지 않고 정확히.
젠장.
그 어린 나이에 충격과 상처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돌연변이처럼 엄마, 아빠를 닮지 않은 모습에 출생의 비밀이 혹시 있는 건 아닐까 잠깐 고민도 했었는데 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저렇게 대놓고 한다고? 나의 의심이 사실로 굳어지려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집은 그 당시 하천을 끼고 옆 골목에 위치해 있어서 주변에 잠깐 산책 다니며 거니는 다리만 해도 벌써 3개가 넘었다. 우리나라의 한강은 또 얼마나 유명한가. 보자 보자. 자이언티가 그렇~~ 게 아프지 말자고 사정하고, 엄마~ 엄마~ 외치는 "양화대교"에, 너를 보면 나는 잠이 와~ 이상하다 그치? 하고 대화하듯 노래하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에 나오는 잠수교에, 강물은 흘러갑니다~ 아~아~ 혜은이의 "제3 한강교"(지금은 한남대교로 바뀜)까지 다리가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다리에 관한 노래도 다양하냔 말이다. 한강 위에 놓인 다리가 줄잡아 30개가 넘는다. 우리나라에 한강만 강이더냐. 강도 많고 산도 많은 아름다운 우리나라가 아니던가... 낙동강, 섬진강, 금강, 영산강, 만경강 등등 이 많은 강에 놓인 다리를 다 뒤져 친엄마를 찾을 생각을 하고 있자니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 나는 이미 고아가 된 느낌이었다. 그 많은 다리를 어찌 다 찾아 헤매느냐고...
엄마, 아부지는 생활이 넉넉지도 않으면서 뭘 또 나까지 입양해서 키우셨대...
언니도 있고, 남동생도 있는데 왜 날?
그냥 친엄마랑 살게 내버려 두지. 하필 왜?
혹시 친엄마는 나를 낳고 하늘나라로 떠나신 걸까?
의아한 마음만 일었다.
출처. 생동감있는내삶 블로그
미아 될 뻔한 경험은 다들 한 번씩 있는 거잖아요?
서울로 이사를 왔지만 엄마와 이모들은 사이가 참 좋아서 학교를 빼먹고 부산 이모네로 온 가족이 놀러 간 적이 자주 있었다. 그 당시는 토요일까지 수업이 있던 주 6일 등교였지만 처음 결석이 어렵지 그다음 결석은 참 쉬웠다. 지금처럼 체험학습서를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담임선생님께 "저 이번 주 토요일에 친척 집에 가요~" 하고 말만 하면 결석이 허락되었는데 따라서 9살인 언니는 종종 토요일에 학교를 빼먹고 7살인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친척집에 가는 걸 즐겨했었다.
칙칙폭폭
움직이는 기차에 몸을 싣고 준비해 온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먹으며 장장 5시간의 기차여행의 지루함을 달래다가 밤 10시가 되니 새나라의 어린이였던 나와 언니, 남동생은 꿈나라에 빠져 들고.
12시 반쯤 기차는 모든 운행을 마치고 종착역에 다다랐다. 엄마, 아빠는 금, 토, 일 3일간 지낼 짐을 이고 밀고하느라 바쁘셨는지 언니만 깨우고 "란희 챙기라~" 말하곤 5살짜리 남동생을 안고 기차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 나가셨다. 하지만 이제 겨우 9살짜리인 언니는 새벽 1시 가까운 시간에 정신이 빠릿빠릿하게 들어올 리가 없다. 당연히 내가 같이 따라 나오겠지 하는 생각에 언니는 엄마, 아빠 뒤만 쫄래쫄래 따라 기차를 내리고 그렇게 개찰구를 지나 기차역에서 쭈욱 뻗어 내려오게 만들어진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엄마, 아빠가 뒤를 돌아다보며 언니한테 물었다.
"윤희야~ 란희는 어데 갔노??"
비몽사몽인 언니는 눈을 비비며
"응, 내 뒤에."
하니
"뒤에 어뎄노~ 없다! 빨리 기차 안에 드가서 델꼬 온나."
언니는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어 기차 안 아까 앉았던 자리로 다시 들어왔고... 멈칫 놀라더니 황급히 다시 뛰어나갔다.
"엄마!! 엄마! 란희가 없어."
"응??!! 우짜꼬 우짜꼬!! 딴 사람 따라 내렸는갑다. 우짜꼬!!"
엄마, 아빠는 무한의 계단과도 같은 그 많은 계단을 뛰어내려 가 제일 처음 내린 승객을 따라잡을 만큼 달리고 또 달렸다. 혹시나 유괴범이 나를 홀랑 안고 택시라도 타 버리면 끝장이라고 생각이 들었으니 제일 첫 승객을 끝끝내 따라잡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결국은 따라잡고 숨을 돌리며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보아도 조그마한 일곱 살짜리 여자 아이는 보이지 않고 망연자실 휑한 눈동자로 내달린 쪽을 다시 뒤돌아 쳐다봤다. 아빠는 혹여나 반대쪽으로 갔을까 싶어 엄마와 반대쪽으로 또 뛰어가 나를 찾아 헤맸고...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아이를 찾기 위해 아닌 달밤에 질주를 했건만... 온데간데 보이지 않는 딸. 엄마는 거의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이리 갔다 저리갔다만을 반복할 뿐이었고...
그러더니 아빠가 소리쳤다.
"어!!!"
저 멀리 계단 위쪽에 역무원 손을 잡고 눈을 비비며 걸어 내려오는 딸아이를 발견하고는 계단을 두 개씩 세 개씩 뛰어오르며 아빠가 나를 향해 달려오셨다. 그러더니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역무원한테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당시 엄마, 아빠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부모가 돼서 아이도 제대로 안 챙기고 뭐 하는 거냐고 훈계 비슷한 걸 하신 거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로만 알고 있던 아빠가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자꾸 숙이는 걸 처음 보았다. 연신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는 것을 보고는 참 이상한 광경이다 싶었다. 고개를 숙여야 하는 원인이 "나"라는 것도 의아했고.
그제야 나는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게 아님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알 수가 있었다.
추운 겨울 초입
땀이 비 오듯 흐를 정도로 나를 위해 뛰어다니셨던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고 말이다.
엄마, 아빠가 땀이 날 정도로 더운 걸 하늘도 알았는지 때 마침 시원한 눈발이 하나 둘 흩날리더니 이내 함박눈이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참! 언니가 기차로 다시 들어와서 날 찾았을 때 언니는 왜 날 찾지 못했을까?
나는 계속 조용히 자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게 앉는 기차 안의 의자 모양이 모두 똑같이 생긴 데다 언니도 다급한 마음에 얼른 확인하고 엄마, 아빠께 말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달려와 확인한 칸은
내가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바로 전 의자였던 것이다.
언니가 분명히 우리 자리라고 확신한 그 자리에 내가 없다고 착각한 언니.
난 그 의자 바로 뒤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언니가 나를 찾으러 온 줄 알리 없는 나는 여전히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었고,
승객이 내릴 때 두고 내린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던 역무원이 차 내에 아무도 없는데 홀로 자고 있는 꼬마를 발견하였고, 나를 깨워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핸드폰도 지문인식도 없던 옛날이라 까딱하면 일곱 살에 미아가 될 뻔했던 소름 돋는 이야기였다.
그 이후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할 때 그 다리는 한강을 건너는 다리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한테도 다리가 있구나를 나이를 먹으며 알게 되었고 해피엔딩의 에피소드는 아직까지도 나를 짜릿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