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다정한 자매가 어쩐 일이었을까. 살짝 투닥거리며 싸웠었는지, 한 사람의 잘못이라 하더라도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며 연대책임을 지게 하셨던 엄마는 혼쭐을 내줘야겠다며 이번에도 언니와 나 둘 다 벌을 세우셨다.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초침이 째깍째깍 소리를 내고 바쁘게 한 바퀴 돌아야 분침은 늑장부리며 겨우 한 칸 쫓아가는 커다란 시계를 아직 보는 법을 몰랐던 우리에게 엄마는 가장 중요한 "얼마동안"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정해진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이라도 부여잡을 수 있으니 벌을 설 때 버티기가 그나마 수월했을 텐데 기약이 없다는 건 같은 시간 동안 벌을 서더라도 더 힘이 드는 효과가 있었다. 고단수의 엄마는 짧은 시간 동안의 벌을 효과적으로 주려는 생각이셨는지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신 건지 끝내 "언제까지" 벌을 설 거라는 말씀을 안 하셨다. 더욱 정신적으로 힘들게 해서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려 하셨음일까.
시계 볼 줄 모른다 하더라도
"긴 바늘이 2에 갈 때까지 벌설 거야."
라든지
"긴 바늘이 거북이 쪽으로 갈 때까지 그러고 있어."
라고 하셨더라면 참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무리가 가능하였을 텐데...
출처. 셔터스톡
끝끝내 엄마는 우리가 벌서는 시간이 얼마가 될지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언니와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둘 다 손을 번쩍 들고 두 팔을 귀에 딱 붙이는 FM자세를 취하고 벌을 섰다. 마치 "벌을 선다면 이와 같이"의 대표주자라도 되려는 것인지 아주 프로원칙러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정자세.
당시 아빠는 타국에 일하러 가셨고 언니와 나 말고도 두 살 터울의 남동생까지 있어서 엄마는 늘 바쁘셨다. 유치원에 가지 않았던 우리 셋 뒤치다꺼리에 엄마는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일명 돌밥을 몇 년간 하신 건지.
손들고 벌을 선지 3분도 안 되었지만 팔이 호달달 떨리는 것이 벌써 죽을 맛이다.
엄마는 혼자서 분주하게 집안의 모든 일을 다 하셨어야 했기에
벌서는 우리를 내버려 두고 부엌에 가셔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셨는데 뭐가 더 필요하셨는지
나갈 채비를 하시고는 밖으로 나가셨다.
엄마가 나가신 기척이 들렸다면 언니와 나는 팔을 잽싸게 내리고 전기가 찌릿찌릿하게 오는 팔을 주물러주어야 했건만 미련 곰탱이 같던 심지 굳은 자매는 둘 다 손을 내리지 않고 꿋꿋하게 벌을 섰다.
정직한 걸까. 아둔한 걸까.
10분이 흐르고...
꿇고 있던 다리가 저릿저릿.
코에 침을 발라야 낫는데 침을 바를 손이 없다.
20분이 흐르고...
팔이 덜덜덜 떨리다 못해 부들부들 사시나무 떨 듯 흔들린다.
30분이 흐르고...
지옥에 떨어지면 이런 고통을 느끼게 되는 건가.
절대 나쁜 짓은 하면 안 되겠다.
40분이 흐르자...
이마에 식은땀이 툭 떨어진다.
어린 나이어도 자존심은 있었고 또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엄마 말 잘 들을게요." 하며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어봤자, 잘못을 빌어봤자 들어줄 엄마는 집에 없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벌을 준 것을 깜빡하시고는 시장에 장을 보러 가셨으니까.
"엄마 왔다~~" 하고 밝은 목소리로 들어오시던 엄마는 평소 같으면 쪼르륵 달려 나와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를 외쳐야 할 우리 셋이 보이지 않자 후다닥 들어와 우리를 보고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리셨다. 엄마가 손을 내리라는 말을 안 해서 40분이 넘도록 땀을 삐질삐질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벌을 서고 있던 우리를 뒤늦게 보신 거였다.
"아니! 아직도 벌을 서고 있었어??"
"엄마가 내리란 얘길 안 하셨잖아요... 엉엉."
어제 설이라서 오래간만에 가족들이 모인 자리.
어렸을 적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엄마가 나간 거 알면 살짝 좀 팔을 내리지 그랬냐." 하시는 엄마.
"우리가 손 내렸으면 아마 더 혼났을 걸요?" 하는 언니.
우린 서로 다른 기억의 조각들을 꿰맞추며 오랜만에 과거를 회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20대, 30대도 지나 어릴 적 나보다 훨씬 큰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