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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줄을 모르는 데 어떻게 써요

반성문

by 루시아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5학년 때도 글과 함께 살았다.

다른 친구들이 쓴 글을 이쪽 반에서 저쪽 반으로 전달해 주는 글 전달자로 역할을 했으니 어찌 보면 글을 짝사랑한 기간이 몇십 년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학교 내 우체부 운영의 일원이었다.

길거리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을 거치는 것만 빼고 우체부 시스템을 고스란히 모방하여 진행되었다.

편지지에 쓰고 고이 접어 편지 봉투에 넣은 그것에 필요한 우표는 우리가 직접 만들었다. 시중 우표와 똑같은 사이즈로 네모 반듯한 공간 안에 비둘기를 한 마리 직접 그려 넣었고 그것을 매번 그릴 수는 없으니 복사하고 잘라서 원하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면 그 우표를 봉투 오른쪽 위에 붙여 교내 1층 우체부 창구에 와서 접수하면 되는 것이었다.


평소 말 할 수 없던 마음속 이야기를

평소 말하는 스타일과 다르게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를 곱게 담아 써 내려간

편지글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을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 전달해 준다는 것은

견우, 직녀가 7월 7일 1년에 한 번 만날 때 기꺼이 자신의 등과 머리를 내어주는 까마귀와 까치가 된 것 마냥 참 설레고 기쁜 일이었다.



출처. 스몰빅 조아연 블로그



편지를 한 움큼 안고는 수신인이 있는 반으로 가서 이름을 불러 전달하고 또 다른 반으로 향해 이동할 때는 더 어릴 적 소꿉놀이에서 역할 놀이를 하듯 재미있었고 발걸음 또한 경쾌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교내 우체국에서의 사건이 발생했다.

안타까운 사건의 주인공은 애석하게도

다름 아닌 나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우체부 내에서의 나름 분주한 작업 중이었다. 한 장에 여러 장 붙어 있는 우표들을 가위로 잘 오려내고, 들어온 편지를 수신자 학급별로 분류하고, 어처구니없게도 받는 사람에 아무것도 안 쓴 봉투는 한쪽으로 빼놓아서 발신자를 찾아내야 하기도 하고 나름 꽤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는데.


바로 그때 교내 우체국 창구 안으로 내 주먹만 한 돌 하나가 툭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떼구루루 굴러 들어왔다.


'아~ 이놈의 인기는~~'


이란 생각은 어른이 돼서 했었고 그 당시에는 그런 쓸데없는 장난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관심이 있으면 관심이 있다고 말을 하거나 편지를 쓰면 될 일이지 왜 이리 싫어하는 일을 해서 관심을 끌려고 한담?'하고 생각했다.


신나게 여자아이들끼리 고무줄놀이를 할 때도 고무줄을 칼로 끊고 도망가는 남자아이들이 꼬옥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좀 예뻐 보일까 싶어 치마를 입고 간 날은 '아이스케키'를 하는 같은 반 머저리 같은 남자아이가 꼭 있었다. 청소년쯤 되어야 속바지를 입고 치마를 입지 어린 여자아이에게 속바지란 있을 턱이 없던 지난날, "아이스케~~키"를 외치며 치마를 휘떡 뒤집고 가는 남자아이 때문에 내 팬티색이 빨간색인지 노란색인지를 고스란히 들킨 날에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 씩씩거리면서 담임선생님께 "OO이가 아이스케키 했어요~" 하고 이르면 그 아이를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혼쭐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그러지 마라~"라고만 할 뿐이었다. 그러고선 오히려 "OO이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냐?"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선생님께 일러도 아무 소용없음을 깨닫고 그 아이와는 마주치고 싶지도 않아 피해 다녔는데 하필 통창유리로 되어 있던 우체국 반달 모양의 창구로 들어온 그 돌멩이도 역시나 아이스케키를 즐겨하던 그 아이의 짓이었다.


성질이 난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돌멩이를 잡아 그 남자아이가 있는 쪽으로 "하지 마." 하며 창구 쪽으로 밖을 향해 던졌다. 그렇게 일단락되는가 싶었는데 어랍쇼? 또 같은 돌멩이가 창구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던질 줄 알았다는 듯이 밖에서 그 돌을 다시 안으로 던져 넣은 것이다. 여기서 끝낼 수가 없다. 여기서 가만있으면 꼭 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나이였으니까. 다시 들어 밖으로 좀 더 멀리 던져야 줍기 귀찮아서 다시는 안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손목에 힘을 실어 던지는데


우지직...


그 돌은 창구를 비껴나가 바로 위 통유리에 부딪히고는 그대로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강화유리가 아니었던가 보다. 그 유리는...

그리 약한 충격에 깨질 줄이야... 실금이 좌악 난 유리를 보고 난 겨울왕국의 마지막 장면의 얼음이 되어버린 안나처럼 굳어버렸다.

어느새 그 남자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발도 없는 소문은 어찌 그리 빠른 것인지.

다음 날 교감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학교 기물을 그렇게 부수면 되겠냐?"


똑똑 노크 후 들어간 교감실에서의 첫마디였다.


왜 그랬니?

하고 이유를 묻지 않다니, 가만히 학교 잘 다니던 아이가 갑자기 정신분열이 일어나 유리를 마구 깨고 그러진 않았을 텐데 필시 이유가 있어 깨진 것이었을 텐데 이유와 과정은 아무 필요가 없는 거였다.


물어보지 않으니 대답할 수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는데

뒤이어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교감선생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반성문 써가지고 와."


반성문...

반성문?

반성문이라니!


태어나서 반성문이라고는 써 본 역사가 없었다. 내 자랑이 아니라 평소에 나는, 타인을 돕지는 못해도 피해는 주지 말자라는 생각이 가득했으므로 반성문 쓸 일은 애초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서 "반성문 쓰는 방법"이라든지 "반성문 이렇게 쓰면 OK"라든지 하는 것을 유사하게 모방이라도 하면 될 일이었지만, 고등학교 졸업즈음 컴퓨터가 일반화되었으므로 초등, 그러니까 국민학교 시절에 나는 인터넷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쓰는 방법을 모르니 난감하기 그지없지만 어쩌겠나. 써오라는데 써야지.



<반성문>
제가 유리를 깨고 싶어서 깬 것은 아니고요.
어떤 남자아이가 밖에서 돌을 안쪽으로 던져 넣어서
제가 그것을 밖으로 던지다가 그런 것인데요.
그 아이가 또 안으로 던져서 제가 그걸 밖으로 던진다는 게
잘못해서 유리가 깨진 거거든요.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
저러쿵



교감실에서 내게 물어보지 않아 억울한 마음이 가득 담긴 정황을 써내려 갔다.

반성문이 아니라 과정문, 상황문이었다.


하루가 지나 교감실에 가서 제출한 이 반성문을 보시던 교감선생님은 좀 읽으시나 싶더니 갑자기 내 반성문을 북북 찢어버리셨다. 그리곤


"이게 무슨 반성문이냐! 다시 써 와!"




행사마다 불참을 너무 자주 하는 프로불참러 조세호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초대를 안 했는데 어떻게 가요..."


왜 이 구절이 떠오를까.


"반성문을 쓸 줄을 모르는데 어떻게 써요..."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 말마저 내뱉을 수가 없었다.

혹시 유리값을 배상하는 돈에 웃돈까지 두둑이 얹어 촌지를 건넸으면 일이 이렇게 번잡스럽지 않았을까.


억울한 마음을 가득 담아 교무실을 나와서는 쓸 줄 모르는 반성문이니 지난번 반성문에 내가 쓴 상황, 과정에 좀 더 디테일을 첨가하여 세부적이고 더 적나라한 과정들을 써서 냈다.


결과는

또 종이만 북북 찢겨나갔고.


세 번째 반성문마저 또 찢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반성문도 반성문이지만 그 망할 교감실에는 또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체념하는 마음으로

반성문을 써 내려갔다.



학교 기물을 파손한 것을 반성합니다.

유리를 깨뜨린 것을 반성합니다.

그 아이도 잘못한 것 같지만 저는 반성합니다.

반성합니다.

반성합니다.

...

...

...



"반성합니다"라는 단어로 종이에 한가득 도배를 했다.

결과는 합격.


시험 합격도 아닌데 참 개운하고 기뻤다.

속은 좀 쓰리긴 했지만.






그 이후 교감실 앞을 지나야 하는 일이 있을 때는 빙 둘러 멀리 다녔다.

잘 몰라서 엉망으로 써야 했지만 그래도 내 글이 북북 찢겼다는 수치심과

과정, 상황은 전혀 관심 없었던 어른에 대해 환멸감도 느꼈으므로.


나는 다짐했다.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어린이와 대화할 일이 있을 때는

과정은 무시한 채 결과만 놓고 따져 묻지 않을 거라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대화로 풀어가겠노라고.

그리고 반성문 따위는

절대 쓰게 하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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