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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an 26. 2023

나는 혼자서도 족발을 시켜 먹는다

먹는데 진심입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입맛이 없다. 

입안이 까끌까끌 영 먹을 것이 당기질 않는다. 

크는 아이들은 돌아서면 배가 고플 나이니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부릅뜨고 냉장고에서 뭐라도 꺼내 데우고 그릇에 담고 엄마 코스프레를 한 다음 상에 차려주고 먹어라~~~ 하고 외친다. 


밤늦게까지 일을 한다. 

낮에도 일을 하고 밤에도 일을 하고 일하는 게 즐겁고 재미있고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다. 

아무래도 나는 일 체질인 것 같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완벽하면 신이지. 그게 사람인가~ 하고 핑계를 대본다. 

집안일은 젬병이란 얘기다. 뭐 허구한 날 그게 그 일이고 똑같이 반복해야 하는데 이건 뭐, 해도 티도 안 나고 안 하면 티가 왕창 나는 집안일은 그저 이 일만 몇 십 년을 내리하고 계시는 우리 전업주부님들께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어찌 되었든 늦게까지 일을 했으니 입맛은 없고 나의 아침은 거르면서 아이들만 챙겨주게 되는 일과가 지속되고 있다. 어차피 센터에서 12시 반쯤 점심까지 챙겨주니 아침을 너무 거하게 먹으면 점심때 애써 챙겨주시는 식사를 너무 안 먹을까 싶어 적당한 양으로 챙겨준다. 이것도 사실은 좀 핑계다. ^^;


아이들을 센터에 출근(?)시키고 1시 가까운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혼자 일을 또 하고 있노라면 슬슬 입질이 온다. 맛있는 걸 먹고 싶다. 내가 한 음식 말고 남이 한 음식을 먹고 싶다. 

갑자기 족발이 당긴다. 마늘에 달달한 양념을 해서 족발 위에 푸짐하게 살살 올려놓은 비주얼에 이미 내 정신은 반쯤 넘어간다. 마늘이 그냥 마늘이 아니다. 마늘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매우 달콤하고 마늘 특유의 쌉싸름한 맛은 남아 있으니 느끼한 고기맛을 잡아 주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역시 아는 맛이 무서운 법. 내 손은 나의 뇌와는 상관없이 이미 휴대폰 어플을 열고 뭐에 홀린 듯 툭 툭 툭 누르더니 어느새 결제버튼을 톡 눌러버렸다. 




직접 찍은 건데 왜 팸플릿 사진 느낌이 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ㅎㅎ




와우~ 빨리도 온다. 

역시 우리나라 좋은 나라. 

여윽시 배달의 민족~ ㅎㅎ (단군왕검과 홍익인간이 나올 때 같이 나오는 민족인 배달의 민족은 그 배달이 아니겠지만)

나는 이민은 꿈도 못 꿀 정도로 우리나라의 이 배달서비스가 너무 맘에 드는 사람 중 하나이다. 



포장을 뜯어내니 냄새가 기가 막힌다. 

상추와 깻잎을 포개어 왼손에 잡고 족발 한 점을 새우젓에 푹 찍고 무김치 하나를 척 올리고 명이나물과 무절임, 쌈장, 마늘 편까지 올려 완성한 쌈을 내 입 안에 퐁당~!

크으...

그래 이 맛이야~!







예전에 나는 주로 희생에 중점을 두었었다. 

나보다 남편, 나보다 아이들, 나보다 부모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대사가 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아무리 희생을 하고 위하고 아껴도 그만큼, 내가 베푼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희생할수록 나도 모르게 점점 불만이 쌓여간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희생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알게 모르게 베품을 받는 상대도 부담감이 상당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날 나를 배신하는 자식들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하고 말이다. 

이런 대사를 내뱉는 순간 공치사가 되어 버린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동안 무척 순수했던 마음이었는데 한 마디 대사로 공치사 취급을 당한다는 게. 


나는 그래서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내 몸을 내가 제일 먼저 아끼고 챙기고

내가 원하는 걸 섣불리 지나치지 않고 

내가 나를 제일 많이 사랑해 주기로 하였다. 


내가 나를 아껴주지 않으면 누가 아껴줄까. 


좀 이기적이라고 너무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자식들은 나보다 오래 살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은 거다. 


내가 있어야 가족도 있고 남도 있다. 

나는 오늘도 나를 예뻐하고 나를 좋아해 주고 나를 사랑해 주기로 했다. 


음~~~

오늘은 또 무얼 먹어볼까~~













보고 있나? 남편?? ㅋㅋ

어제 그랬지.

냉장고를 열어 보고 도대체 뭘 먹은 흔적이 없는 것을 보고는


"낮에 뭐를 먹기는 먹어?"


하고 물었을 때 나는 당황했어. 

족발을 먹고 남은 그것들은 미안한 마음에 말끔히 치웠으니 

자기가 알리가 없겠지. 


혹시 내가 하루 종일 이슬만 먹고 살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겠지?


나름 잘 먹고 잘 살고 있어. 

걱정 안 해도 돼~ 


이렇게 몇 글자 남기긴 하지만...


이 글은 남편이 안 보면 좋겠는데, 

꼬옥 보라는 글은 안 보고 

안 봤으면 하는 글은 꼭 보는 당신은 

청개구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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