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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15. 2023

치과에서 나는 입술이 아팠다


치아는 마취를 해주니 하나도 안 아프다. 맨 처음 마취약을 주사할 때만 바늘 들어가는 것이 소름 돋는 느낌일 뿐, 잠시만 따끔하고 나선 곧 먹먹해지는 무감각으로 나를 이끄니 오히려 편안하다. 마음만 좀 굳게 먹고 '내 입은 이제 내 입이 아니다.' 하고 최면을 건다면 "윙~" 하는 치료 소리 정도야 백색소음 삼아 잠을 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건 문제가 없는데 자꾸만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이 나를 괴롭혔다. 아니나 다를까


"아~ 하세요." 하는 소리에

입을 "아~~" 했더니,

입술 가생이가 그만 "찍" 찢어지고 말았다. 아프다.


어처구니없게도 입술에 피가 나는 걸 목격한 간호사는

"입술이 너무 건조하시니 부드럽게 좀 발라드릴게요."

하며 수술용 장갑을 낀 손으로 바셀린을 발라주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수술용 장갑의 미끄덩거리면서 인위적인 고무느낌이 입술에 닿을 때는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어색함이지만 더 이상 찢어지지 않게 배려를 해 주니 어색함과 불쾌한 느낌 따위는 친절함으로 상쇄시켜 본다.


조치를 취했으니 이젠 더 이상 불편할 게 없겠다 믿었건만...

방심했음을 곧 깨달았다.


의사가 내 입술을 거치대 삼아 손가락을 입 안에 집어넣다가 연약한 내 입술이 치아에 눌리고 낑겨버렸고


"아!"


하고 낮은 비명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는 듯 의사는 도대체 어느 대목에서 아픈 거니 하는 의아한 목소리로  


"어디... 가 불편하세요?"

물었는데 나는 기다렸다는 듯


"이플(입술)이요."

하고 마취되어 발음도 잘 안 되는 입으로 웅얼웅얼 댔다.




치과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치아 치료만 생각했을 뿐, 아파도 치아나 잇몸이 아프겠지 했는데 전혀 예상할 수도 없던 엉뚱한 나의 입술이 수난을 겪으리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한 전개였다.

인생 참, 한 치 앞을 모르는 희한한 여정인 듯하다.


이렇듯 살다 보면 나름 계획하고 예상한 것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뜻밖의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

어떤 일이 닥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좀 불안하기도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예측할 수 없다는 매력이 오히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문사진 출처.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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