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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10. 2023

다람쥐는 도토리를 싫어해

충격의 도가니

나는 이러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을까.


엄마~ "운동"이 영어로 뭐야~

으응~ 엑써얼싸이즈~~


엄마~ "법규"가 욕이야?

아니야, 법규는 법이랑 비슷한 뜻인데 뻑큐랑 발음이 비슷해서 공공연한 장소에서 욕을 할 수는 없지만 욕을 하고 싶을 때 나지막이 들릴락 말락 하게 하는 말이라고나 할까?


엄마~ 이 수학문제는 어떻게 풀어?

으응. 이건 이걸 이렇게 해서 요렇게 하고 또 저렇게 하면 돼~ OK?


우와~~ 엄마 천잰데??

으응? 이런 게 천재면 세상에 천재 아닌 사람 없겠다. 그냥 생각이 났어~ ^^


6학년, 4학년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니, 물어보면 다행히 아직은 막힘 없이 대답은 가능하다. 어릴 때부터 국어를 좋아했으나 어른이 되어 학원에서는 공급수요의 원칙에 강하게 따르는 과목인 수학을 가르쳤었고, 대학은 과학을 전공하였으나, 복수전공은 영어영문학을, 노래를 좋아하고 곧잘 부르니 노래방에서 오~~ 소리를 꽤나 들었었고, 그림 실력도 나쁘지 않아 A는 놓치지 않았으니 뭐 그럭저럭 아이들이 묻는 여러 분야의 질문에 아직 막힘 없이 대답할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연극영화과를 전공한 어느 어머님은 아이들 어릴 적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면서 주인공의 대사를 흘려 읽지 않고 마치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된 듯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듯 읽어 주다가 '내가 이러려고 연영과를 나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자식을 향한 엄마들 마음은 다 똑같구나 싶다.


뭘 배웠든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이렇게라도 쓰임이 되는구나 하는 마음?

기껏 힘들게 배운 걸 사회에 써먹지 못하고 집에서만 조촐하게 쓰이니 조금 속상하지만 그래도 이건 다행인 건가 하는 속상하고 다행인 게 공존하는 마음?





이렇게 귀여운 다람쥐인데...  / 출처. 픽사베이




어느 날

유튜브를 보던 딸아이가 '설마 이건 모르겠지?' 하는 표정을 짓고는 퀴즈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과연 이것도 엄마가 알까? 아니, 모를걸?' 하는 살짝 웃음 띈 표정을 하고는


엄마~ 다람쥐가 원래는 도토리를 싫어한대~


응? 다람쥐면 도토리고, 도토리 하면 다람쥐지. 에이~~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물론 '도토리는 추억의 싸이월드야~' 라고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고도 싶었지만 유명했던 싸이월드는 내가 결혼도 하기 전 이미 이별을 고하고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으니 애석하게도 딸아이에게는 의미가 없다.


곧이어 계속되는 딸아이의 설명.

다람쥐는 원래 도토리를 좋아하지 않는데 고열량이고 딱딱해서 볼에 넣어 이동할 수도 있어서 도토리를 먹게 된 거래. 도토리 안에는 도토리를 먹고사는 애벌레가 있고, 다람쥐는 도토리를 땅에 일부러 묻어두기도 하는데 애벌레가 도토리를 먹고 좀 더 커지면 그 애벌레를 먹기 위해서래.


하며 한껏 뽐을 내며 '나~ 엄마보다 더 많이 알고 있지?'

하는 눈빛으로 열렬히 설명을 한다.



와... 충격.

다람쥐와 도토리의 관계란 유치원 학습지에서도 볼 수 있듯 빨간 펜으로 서로 이어줘야 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짝꿍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다람쥐는 도토리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애벌레를 더 좋아했었다니. 결국 다람쥐도 설취류 "쥐"였을 뿐이었다니... 따라서 개구리며, 뱀이며, 쥐까지 잡아먹고 있었다니! 며칠 전 딸아이가 색종이로 만들어 준 햄스터까지 징그러워진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그동안의 나는 너무 좁은 시야로 살아왔구나. 좋아한다고 해서 정말 좋아하는 줄만 알았고 왜 좋아하는지는 이유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좀 성의가 없었달까.



그리고 두 번째 충격.

이제 6학년인 이 아이가 나보다 더 아는 게 생겼다는 것.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 내가 이 아이에게 오히려 물어보는 날이 더 많아지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가 아버지에게 리모컨 작동법에 대해 설명하다 결국에는 버럭 화를 냈던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다람쥐도 충격이었지만 다람쥐의 이야기가 딸아이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것이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이제 앞으로 충격의 연속인 삶이 되겠지.

정신 혼미해지는 걸 잘 추스르고 잘 버텨나가길 나 스스로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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