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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19. 2023

독창과 표절의 가운데에 서서


나는 식상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앞집에 영숙이가, 옆집에 말자가, 뒷집에 숙희가, 숙희 남친 철수가, 철수 친구 덕구가 일기장에 대충 휘갈겨 내려간 듯한 판에 박힌 식상한 이야기들을 싫어한다. 어린이라면 이해한다. 태어나 세상을 얼마 겪지 않은 어린 친구들은 매 순간 만나는 그 모든 게 새로움일 테니 본인이 느낀 다소 일상적인 것들을 나열한데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경험이 무척 많은 어른들이 어린이가 쓴 일기처럼 심심한 글을 쓴다면 그 글은 식상하기 그지없을 것임은 자명하다.



여기저기서 서로를 베끼는 것이 보인다.

괜찮은 문구라 느꼈던 그것은 그 문구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른 장소에서도 꽤 자주 보인다. 놀라울 정도로 확산속도가 빠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때 화르륵 조명을 받았던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도 당시 어딜 가나 접하게 되니 나중엔 지겹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역시 사람의 눈은 좋은 것을 볼 때는 거의 비슷해지는 것일까. 한 개그맨이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금세 인기를 끌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따라 하는 것처럼. 개그맨의 유행어는 "말뿐인 영광"이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다. 물론 "특허"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말의 특성상 문서화하기 어렵고 그저 말로 지나가는 것이라 여기는 일이 다반사이므로 "특허"라는 테두리로 가두어 놓고 내 것이라고 한정 짓기가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인기가 있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면 그 유명세에 편승하고자 죽고 싶지만 떡볶이도 먹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고 하마터면 열심히 뭘 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도 자꾸만 늘어났다. 인기작가도 아닌 내가 아웃사이더 노래에서 따와 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라는 제목이 신박하게 느껴졌는지 이 제목마저 똑같이 따라 하는 글도 생겼으니 유명 문구는 말하면 입이 아프다. (한데 이미 나온 가사를 패러디한 것이니 나 또한 온전한 창작을 한 것은 아니다.) 



글의 지루함은 물론 식상함을 끔찍이도 싫어해서 같은 문장을 쓰더라도 흔하지 않은 표현, 남들이 잘 쓰지 않는 표현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가급적 엉뚱한 것으로라도 비유를 만들어내려고 애쓴다. 그런 노력을 거쳐 새로운 문장과 문구를 지루한 문단 속에 하나씩 곁들이면 한없이 졸리기만 했던 글이 그제야 조금 읽어내기 수월할 정도의 신선함을 갖는다.



이건 어떨까?

만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을 것만 같은 독창적인 생각으로 문장을 만들어 내고 비유를 곁들여 하나씩 글을 써나갔다고 쳐보자. 한데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나와 꼭 닮은 도플갱어가, 나와 꼭 닮은 상상력으로, 나와 꼭 같은 문장을 이미 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입장에서는 아직 내가 직접 본 적이 "정말" 없었으므로 내가 처음 이 문장을 만들어 냈다고 우겨본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으므로 우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당함을 피력하는 것이겠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우기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시간상으로 보았을 때 그건 빼도 박도 못할 표절이 맞으므로. 그런데 그건 정말 표절일까? 이런 경우가 생길 확률 자체가 매우 낮긴 하지만 정말 그건 독창적인 것이었는데?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세상에서 앞 뒤 시간상의 구분은 어찌 구별할 것이며 누가 최초로 그것을 만들어 냈는지를 과연 밝혀내는 게 가능은 할까?



그럼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너무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하게 가져와 내 글에 똑같은 문장을 써버리고 만다면? 만일 제 3자가 "정말 대단한 창의력이십니다. 무례한 질문으로 여기실 수 있겠지만 혹시 누군가의 글에서 가져오거나 참고하신 건 아닌가요?" 하고 물었을 때 절대 아니라고 강하게 반대한다면 어떤 근거로 표절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 그저 양심에 맡기면 될 일일까?



어른을 스승으로 둔 아이들은 이미 베낌을 학습하고 있다.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어른들에게 다양한 것을 배운다. 숫자, 한글, 영어, 사회생활 등등 학습을 할 때 제일 처음 모방을 가르친다. 뭐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가 아니던가. 1부터 9까지 점선만 찍혀 있는 걸 나눠 주고 그 위를 색연필로 칠하며 숫자를 배우고, "ㄱ"부터 "ㅎ"까지 한글도 그대로 따라 쓰며 배운다. 그다음 알파벳도 마찬가지고 좀 더 나아가 단어나 문장, 대화, 독서도 모두 스펀지 같은 아이의 뇌에 모조리 흡수되게끔 모방의 단계를 우선은 거치기 마련이다. 이렇게 베끼는 과정에 익숙한 상태에서 점점 커갈수록 사고도 비슷해지고 문장도 비슷해지니, 조그만 사회 안에서 무엇이든 비슷한 방식으로 익히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비슷하게 표방하게 되는데 이게 점차 나이가 든다고 해서 어느 한순간 방향을 창의적으로 틀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방금 아이의 뇌를 "스펀지"라고 말했는데 이것부터도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나만의 독창적인 단어가 아님을 알 것이다. "뇌"를 "스펀지"라고 제일 처음 기발한 비유를 만든 그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고 우린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그대로 따라 쓸 뿐이다. 그럼 난 지금 표절을 한 것일까?



이쯤 되면, 

다른 이의 글을 아예 읽지 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린이들이 반복적으로 보고, 듣고, 읽어가며 결국 자기의 것이 되는 것처럼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면 그 작가가 독창적으로 생각해 낸 꽤 괜찮은 것들이 자꾸 머릿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니 말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모방을 이용한 습득을 연습해 왔고 습득만이 살 길이니 자연스러운 결과이면서 경계해야 할 행동이지만, 내가 습득하기 싫다고 아무리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는다 한들 습득이 또 안 되는 게 아니니 말이다. 주변에 누가 자꾸만 욕을 해대면 어느 순간 나의 깨끗한 입에서 자연스레 욕이 튀어나가는 것처럼.



그래서 창의력이 필요한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기초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이 머릿속에 있다고 해서 그대로 똑같은 아웃풋을 내지 말고 나만의 색깔로, 방식으로, 변화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서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비빔밥처럼 버무렸다고 해서 그건 표절이 아닌가? 도대체 표절과 독창의 구분은 무엇인가? 버무린 결과를, 기본적인 소스를 제공한 사람과 완전 별개로 보아도 되느냐는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창의력과 독창성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은 양심에 맡겨야 한다는 결론이 나는 것일까?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이 시대에 과연 양심에 모든 걸 맡겨도 되는 걸까? 그렇다고 나는 그 누구의 것도 베끼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한 문장들이 자꾸만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 또 새로운 고민을 만들어 낸다.



막상 내가 맨 처음 말한

"식상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이 문장 자체도 그 누군가 이미 썼던 사람이 있었을 거란 생각에 이걸 발행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춤하는 나를 본다.




출처.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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