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는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보름 전까지만 해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들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쩝쩝거리는 소리가...
각자 조용히 먹는 것에만 집중했더니 이 자리는 흡사 템플스테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해졌고 어디선가 "쩝쩝" 소리가 들려왔다. 상당히 심하게.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이 남자친구와 결혼식 전날 파혼한 이유는 터무니없으면서도 수긍이 가는 이유인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밥 먹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졌어."라는 말.
자식을 낳은 부모는 자식이 먹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고, 하나라도 더 맛있는 걸 입에 넣어줄 일념 하나로 뼈 빠지게 돈을 번다. 당신은 안 먹어도 자식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며 행복해한다. 자식은 배 터져 죽고 부모는 배곯아 죽는다는 옛말은 뜻도 라임도 참 훌륭하다. 같은 맥락으로 애인 사이, 부부 사이에서도 상대가 먹는 것이 예뻐 보여야 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같이 산다. 그래야 같이 살 수 있다.
한 달에 하루만 날 잡아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1년에 딱 열두 번만 밥을 먹는 거라서 설사 맘에 안 들면 "그래 까짓것 조금만 참지."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삼시 세끼를 꼬박 챙겨 먹어야 사는 인간인데 먹는 모습이 꼴 보기 싫으면 그것만큼 고역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또 오해영"의 그 둘은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결혼식 하루 전날 남자친구는 오해영이 반박할 수 없을 이유인 "밥 먹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졌어"라는 말을 해버렸고, 따라서 오해영은 남자친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둘은 결국
헤.어.졌.다.
난 그동안 왜 몰랐지?
남편이 먹을 때 쩝쩝대는 소리를?
습관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주욱 그래왔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주욱 그래 왔고 안 고쳐졌으니 지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난 최근에 알게 된 것이다. 신기하다. 그동안 몰랐다는 게.
아니, 잘 모르겠다. 모든 버릇의 시작점이 다 같을 수는 없으므로 다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 내가 딱 알아챈 그날, 보름 전부터 그런 버릇이 생겼을 수도 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정말 모르겠다. 언제부터 그래왔는지를.
습관의 시작점을 찾다가 헛웃음이 난다.
난 뭐 그리 완벽한 인간이라고!
명절날 식구들이 모여 버릇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버릇이든 내가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긴장되지만 재미있어 웃고 있던 중이었다. 제발 나는 버릇 따위는 없기를 바랐건만 언니가 뜬금없이 남편에게 물었다.
"제부, 잠잘 때 괜찮아요?"
그러더니 정말 깜짝 놀랄 이야기를 이어갔다.
잠잘 때 이 가는 거 여전하냐고. 태어나 처음 듣는, 이를 간다는 내 버릇을 듣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그동안 어찌 그리 모르고 지낼 수 있었을까. 내가 이를 가는 것에 대해서 행여 내가 알게 될까 봐 모두가 입을 꾹 다물고 말을 안 해주기로 약속이나 한 듯.
그러니 내 버릇을 내가 알게 된 건 30대 중반쯤인 것 같다. 당연하다. 잠에 곯아떨어진 내가 이를 가는지 코를 고는지 두 팔을 앞으로 나란히 하여 동네방네 걸어 다니는지 알게 뭐람. 이를 가는 습관이 있다는 걸 처음 듣곤 장난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며 당황했었다. "낮에 뭐 분한 일이라도 있었나 보지!" 하며 내 어설픈 변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나지막이 이야기를 했다.
"이 사람, 피곤하면 이를 좀 갈더라고요."
하아... 정말이구나... 좌절했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도 나쁜 습관, 소름 끼치는 버릇이 있을 텐데 밥 먹을 때 그거 조금 시끄럽다고 비난을 하고 있는 꼴이라니. 이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나왔나 싶다. 너그럽게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될 날이 언젠가 오긴 올까?
출처. 셔터스톡
하아...
이런 글을 쓰는데 하필 남편이 아이들 먹일 배를 깎아 주곤 그중 하나를 콕 찍어 내가 있는 방으로 가져오더니 나에게 팔을 쭉 내밀어 먹으라며 건네준다. 아... 이러면 너무 미안해지는데.
이 글 올리지 말까... 에고... 모르겠다. 어차피 남편은 안 읽으니까. 미안해, 여보. 저리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