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만 되면 없던 식욕이 생긴다.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낮에 먹을 수는 없잖은가. 낮에 먹고 취하면 에미 애비도 못 알아본다기에 낮엔 참아준다. 그리고 원래 술이란 건 까만 밤 배경을 안주삼아 마셔야 운치도 있는 것 아니겠나.
모두가 잠이 든 밤.
나의 황금 같은 자유시간이 시작된다.
내 손이 필요 없이 혼자 씻고, 둘이서 놀고, 혼자 공부하고, 혼자 운동하고, 둘이 대화하는 착한 남매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고 해서 딱히 내가 뭘 해주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의 입은 쉬지 않고 조잘대기에 정신이 좀 없다.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쉬지 않고 질문을 하고, 갑자기 달려와 나를 안아주고 누가 보면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하겠지만 주어진 것에 만족이란 원래 드물고 욕심만 가득한 것이 사람이니 말이다.
그토록 원하던 밤이다.
간단한 안주거리와 이슬 한 병을 장바구니에 넣고 '리뷰 쓸게요~' 하며 배달버튼을 꾹 눌렀다.
신나는 기다림이다. 기다림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있나. 택배 받을 때 기쁨의 약 1.5배에 달하는 것 같다. 밤 12시에 가까운 시간인데 문자가 울린다. 야밤에 누구지? 했더니 죄송이 가득 담긴 문자메시지다.
급하게 오다가 국물이 좀 흘렀다는 사과메시지다.
죄송하다고 이미 하셨는데 마지막에도 또 죄송하시단다.
사람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배달하다가 국물도 좀 흐를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뭐 대수냐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문자를 받고 현관을 열어보니 음식이 도착해 있다. 이미 상태가 심각할 거라고 예측을 하고 있던 터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봉투를 열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흐르진 않아 보였다. 그리고
"아니, 뭐 못 먹을 정도도 아니고 고작 요건데 뭘 그렇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셨을까~"
하는 혼잣말까지 나온다. 나이 들면 원래 혼잣말이 잦다.
본 음식에 같이 나오는 서비스 북엇국이 샌 줄 알고 맛있는 북엇국 양이 줄었겠구나 하는 마음에 조금 속상할 뻔했는데 국이 아니라 부추야채무침 양념이 조금 흘러내려 있었다. 고춧가루 양념이라 봉투에 묻은 것이 좀 지저분하긴 했지만 대충 닦으면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이미 상태를 알고 받으니 그리 심각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전화가 혹시 오려나 하고 조마조마해할 라이더님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바로 답문자를 보냈다.
만일 라이더님의 사과메시지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당연히 깔끔한 배달을 기대한 나로서는 약간의 양념이 비집고 나왔을 뿐인데도 다짜고짜
"아! 뭐야~ 이거 먹으라고 준 거야, 버리는 걸 준 거야~ 별점 다섯 개 다 못 주겠고만?"
괜히 괘씸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실수했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실수를 인정하고 재빨리 사과하는 지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어떡해요. 괜찮아요? 아~ 미안해요." 흡사 아웃사이더의 속사포 랩을 듣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라는 걸.
배달기사님은 진심을 다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내게 보냈고 그 사과로 인해 나는 어느 정도 감안하고 받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진작에 먹을 수 있었다. 그랬더니 평소와 좀 다른 부족한 상태여도 크게 화가 나지 않았고 이번 일로 오히려 라이더님과 가게 사장님 사이에서 트러블이 생길까 봐 괜히 내쪽에서 더 신경이 쓰일 지경이었다.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이기도 하지만 실수가 많은 동물이기도 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사과할 일이 생긴다면 괜히 시간만 질질 끌어 미적거리지 말고 기왕 해야 하는 거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해야, 실수하는 사람도 피해를 입은 사람도 기분 좋게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은 "아웃사이더 - Motivation"의 일부를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