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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Feb 26. 2023

언제나 미완이지만

소재가 떠오르거나 중요한 단어가 생각날 때는 그 기억이 날아가지 않도록 브런치 글쓰기를 쿡 눌러 자판을 열심히 두드립니다. 지금 두드린다고 이 글을 오늘 당장 발행하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지만 발행할 그날을 위해 우선 지금은 열심히 두드려 놓습니다. 바로 내놓는 것보다 시간을 두고 숙성시키며 고치고 또 고쳐봅니다. 그런다고 설마 완벽한 글이 나올 리 만무지만 그래도 맨 처음 날 것보다는 그나마 좀 볼만해지고 읽기는 수월해질 테니까요. 아차차... 오늘은 오늘 태어난 글이라 숙성이 덜 되어 읽기 좀 불편하실텐데 이해부탁드립니다.



뿌옇고 흐리던 눈앞에 안개가 걷히고 열 손가락에 탭댄스 전용 탭슈즈를 신은 듯 도도도독 다다다닥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자판 위에서 춤을 추면 하얀 화면에 내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 내 머릿속 엉킨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그제야 사는 것 같습니다. 허공을 응시하던 맹한 눈이 반짝 빛을 내며 초점을 맞추고 잠자던 뇌가 일어나 기지개를 켭니다. 써야 하는가 봅니다. 써야 한다는 마음이 매번 내 멱살을 잡고 끌어당겨 억지로 쓰는 자리 앞에 데려가 앉힌 줄 알았는데 그저 내 깊은 곳에서는 마냥 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이내 또 궁금해집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걸까요.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보니 그냥 글을 쓰게 된 걸까요. 

계속 쓰다 보니 타성에 젖어 쓰고 있는 걸까요. 

원래부터 생겨먹기를 써야 하는 인간이었던 걸까요. 


어찌 되었든 두드리고 있는 지금 이 마음은 이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어제 잔잔한 호수에 누가 돌을 던진 것처럼 마음 일렁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호수에 돌 던진 거 그게 뭐 대수냐, 돌 던져봐야 잠시 파문이 일 뿐 곧 잠잠해진다며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누가 힘껏 던진 돌은 곧 보이지 않는 호수 바닥에 가라앉았습니다. 

지나가는 그 누군가가 고요를 찾은 호수를 바라볼 땐 그 돌의 존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호수의 물이 다 말라 그 돌을 꺼내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든 당사자나 주변인의 입장에서는 

멀리서 관망하는 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은 일이 보이고 느껴지게 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개개인이 취하는 행동을 보고 회의감이 좀 들었습니다. 눈, 코, 입 생김새가 모두 꼭 같은 사람은 없는 것처럼 모두 조금씩 다른 것인데, 더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면 더할 테지만 그래도 기본이라는 기준은 있을 텐데, 제가 정한 나름의 기준과 입장에서 입이 떡 벌어질 행동이라면 아마 그것은 적어도 기본이 아니겠지요.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내 맘 같을 수는 없겠고, 또 의외로 너무 감동을 주신 몇몇 분이 계셔서 그래도 아직은 이 세상이 참 살만한 곳이구나 하고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네. 그렇겠지요. 

모두가 같을 순 없겠지요. 

하지만 잔잔한 내 마음을 예고도 없이 툭 치고 들어온 돌을, 감사한 감동만으로 모두 덮어버릴 수는 없는 것인가 봅니다. 티 하나 없는 흰색 물에 검정 물방울이 하나 떨어져 하얗디 하얀 물색이 탁해졌습니다. 속이 상해서 흰색 물감을 탄 물을 위에 더 부어 보아도 원래의 그 티 없이 맑은 때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아직도 유아기적 마음이 내 속 어딘가 귀퉁이에 남아 때때로 속상하다고 울어대는 날에는 저도 덩달아 같이 울어버리는 날이 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도대체 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건물 로비 한가운데 제 안방처럼 드러누워 집에 안 가겠다고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속에서 그렇게 울어대면 저도 그 아이 옆에서 같이 건물 천장을 바라보고 눕고 싶어 집니다. 때로 더 크게 악을 쓰고 싶어 집니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고. 혹시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냐고 묻고도 싶어 집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겠지요. 

내 마음속에는 세 살배기 아이가 아직 살아도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내가 보내온 그 긴 시간이 촘촘히 모두 기억나지 않아 당황스럽고 속상하지만


어른이니까요. 

어른처럼 행동해야겠지요. 

이렇게 또 모자란 글 하나를 토해내며 오늘도 하루를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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