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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13. 2023

글이 글을 파묻고 있다

브런치 5개월을 지내고 나서 드는 생각

내 글이 내 글을 묻는 지경이 되었다.


"초심자의 행운" 이란 말처럼

원래 뭣도 모르고 룰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희한하리만큼 행운이 오는 경우가 많다.


난생처음 가본 볼링장에서 유독 스트라이크가 잘 나온다거나

처음 가본 당구장에서 공이 너무 잘 맞아 실력자를 자꾸만 이긴다거나 하는 것처럼


브런치도 신입 작가님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구독자가 50명이 채 안 되는 분들 위주로 메인에 걸어주는 그런 이벤트성 메인 띄우기 등을 볼 수가 있다. 그것도 모르고 예전에 나도 메인에 올라서 기쁨의 세리머니를 하며 어쩔 줄 몰랐던 때가 있었더랬지.


하긴 간절히 원하던 (브런치)작가가 되었으니 올리고 싶었던 글이 얼마나 많았으며 포부는 또 얼마나 대단했던가. 그러니 방앗간에서 주욱주욱 가래떡 뽑듯 글도 술술 나왔던 거겠지. 거침없이 나오는 글을 보며 히야~ 난 정말 작가인가 스스로 감탄하기도 했다. 참 부끄러워진다.


브런치 생활을 한 지도 벌써 5개월 하고도 하루가 지나고 있다. 20대에는 시속 20킬로, 30대엔 시속 30킬로, 40대엔 시속 40킬로로 시간이 흐르는지 뭐가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를까 싶은 느낌도 들면서 매일 하나씩 써온 글이 무려 170개가 넘었음을 보았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매우 사소한 것이라도 글감이 되고 소재가 된다고는 하나 170개 넘는 글을 쓰게 되면 솔직히 앞으로 이제 나는 무슨 개똥망 소리를 써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곤 한다.


초반에는 열의와 패기를 가지고 글을 쓰긴 했지만 그래서 더 거침없는 글을 써 온 것도 있지만 이제 이곳 돌아가는 것도 조금 알고 제반상황들을 알게 되면 글을 쓰는 것이 아무것도 몰랐던 초보처럼 마냥 쉽지만은 않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참 이것저것 다 아는 것처럼 오만 것들을 다 비꽈서 쓴 글도 있었더랬지.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주관대로 떠들어댄 것이 참 부끄럽기만 하다.


더구나 글은 초반일수록 더 열심히 썼고 그보다 더 참신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소재로 썼던 그 글이, 이후에 엉망진창으로 쓴 내 글로 인해 자꾸 묻히는 기분이다. 독자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갓 지은 따순 밥 먹고 싶지 식어빠진 찬 밥과도 같은 옛날 글을 누가 읽고 싶어 할까. 하지만 글은 예전 참신했던 때가 쪼금 더 재미있고 푸릇푸릇한 풋내가 나는 게 상큼한 맛이 나는 법인데 음... 좀 아쉽다. 내 글이 내 글을 파묻는 기분이라서 말이다.


글을 더 쓰자니 더 깊은 땅 속으로 파묻는 기분이고

그렇다고 안 쓰자니 매일 쓰자는 나와의 약속을 깨는 느낌이고

이거 참 진퇴양난이다.

어찌해야 좋을지...


글을 매일 써야 한다는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매우 맞는 말이기는 하다.

김연아 선수도 그랬다.

트리플 악셀을 연습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

고 물었더니

생각은 무슨 생각?

그냥 하는 거지.

라고 하지 않았던가.



생각 따윈 집어치우고 그냥 쓰는 거지 뭐 그러고 싶지만

아마도 매일 쓴다는 것이 매일 발행과 같은 뜻은 아닐 텐데 괜한 강박만 갖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 이제 휴식기를 가지는 것인가. 꼴랑 글 5개월 쓰고?

아. 재밌다. 진짜.

아. 진짜 되게 신난다. ㅡ.ㅡ





(대문 사진 출처.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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