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Apr 15. 2023

성추행한 그 새끼를

친구에게 보냈다...

우선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꾹꾹 담아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성추행한 그놈을 사람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으므로 새끼라고 칭할 수밖에 없었음을 독자님들께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내합창대회에서 운 좋게 1등을 했다.

그건 아마도 관객을 등지고 서서 열심히 팔을 흔들었던 내 지휘 덕분이 아닌가 오만함을 떨어본다. 사실 내가 이렇게 자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긴 하다. 반 친구들에게 사인을 보내며 이 부분은 "점점 크게", 이 부분은 "점점 작게", 이 부분은 "폭풍처럼 크게", 이 부분은 "개미소리처럼 숨을 죽여서" 뭐 이런 약속을 한 구간이 몇 군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월요일마다 했던 운동장 조회시간에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음악 선생님의 팔 움직임을 보고 속으로 열심히 연습한 보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깨너머 배운 지휘지만, 온 마음을 다해 친구들이 나의 요구사항을 알아볼 수 있도록 손짓, 눈짓, 몸짓을 해대니 그 진심이 가닿았던지 까불까불 산만했던 친구들마저 집중하며 내 지휘에 잘 따라와 주었다.


각 반마다 자율적으로 연습한 지 일주일 좀 지났을까, 음악 선생님이 각 반을 둘러보시며 중간점검을 하는 날이었다. 우리 반 합창을 먼저 가만히 들으시고는 끝이 나자, 앞으로 나오셔서 "자~ 선생님이 하면 얼마나 달라지는지 한 번 들어봐." 하며 당신이 지휘봉을 잡으셨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는데 음악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한 말씀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얘~ 아까가 더 낫다~ 너희끼리 열심히 해라 얘~"


큭큭큭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중요 포인트를 알려주시려고 직접 지휘를 하셨는데 중2 학생이 지휘한 것보다 결과가 별로였으니 선생님은 진심인 듯 장난인 듯 삐진 표정을 지으며 나가신 것이다. 체면이 안 사셨겠지.


하여튼 그렇게 열심히 연습을 하고 우리 반은 전체 36개 반에서 합창에 참여하지 않는 3학년 언니들을 빼고 총 24개 반에서 전교 1등을 거머쥐게 되었다. 학교 1등은 구에서 주관하는 합창대회를 학교 대표로 나갈 수 있게 되었는데, 우리 반이 학교 대표로 그 대회를 나가게 된 것이었다. 어깨에 으쓱으쓱 힘이 들어갔다.


음악선생님은 다시 한번 우리 반에 방문하시고는 전달사항을 말씀하셨다.

"합창은 옷을 모두 통일해서 입는 게 기본이니까 윗 옷은 노란색 셔츠를 입고 하의는 남색 치마를 입고 오도록! 그리고 루시아 너는 뒷모습만 보이니까 뒤태에 좀 더 신경 쓰고~"


"저~~ 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대목이 나오는 춘향가에 춘향이도 아닌데 뒤태는 어찌 신경 써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결전의 그날.

학교 재정상태가 별로였는지, 아니면 원래 그래왔던 건지 학교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가면 참 좋았을 걸, 우리는 그냥 다 같이 일반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한 반에 40명 남짓이었던 중 2 여학생들이 단체로 한 버스에 탔으니 버스는 미어터졌다. 사람들은 이미 그 안에 타고 있었는데 우리가 한꺼번에 올랐으니 단번에 만원 버스를 만들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한데 상의는 모두 삐약삐약 병아리색을 입고 있으니 미어터져 불쾌했지만 눈은 산뜻하고 경쾌했다고나 할까. 좀 생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나는 뒷문 가까운 곳에서 버스가 심하게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 세로로 길게 뻗은 봉을 두 손으로 꼬옥 잡고 서 있었다.


그때였다.

내 등 뒤로 누가 찰싹 들러붙는 느낌이 났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공간이 살짝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밀착하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있으니 밀착도 모자라 문지르기 시작했다. 평소 바르고 고운 말만 고집해 온 내 입에서 '미친 새끼'라는 말이 튀어나갈 뻔했다. 이건 분명 성추행이었다. '이게 돌았나.' 뒤돌아 흘끗 쳐다보았지만 차마 얼굴을 쳐다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살짝 돌아 무릎 아래쪽을 겨우 보니 30대쯤 되어 보이는 옷차림이 보였고 사내새끼가 분명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싶어 얼른 다른 공간으로 움직여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만원 버스는 나에게 쥐똥만큼의 공간도 내어주지 않았다.


인생을 쪼오금 알게 된 지금의 나였다면 소리라도 냅다 질러 그놈 면전에 대고 크게 창피를 주었을 텐데, 고작 중 2의 어린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면 누가 도와주긴 하겠다만 왠지 몹쓸 추행을 하필 내가 당했다는 창피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성폭행을 당한 여자들에게 "밤늦게 싸돌아다니니 당하지."라든가, "그러게 누가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래?"라는 말을 하던 시대였다. 그러니까 죄는 미친 새끼가 저질렀지만, 아무 죄 없는 여자들이 욕을 들어먹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 시대 분위기를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고 성추행을 당한 건 당한 쪽에서도 분명 빌미를 제공했겠지 하는 눈초리를 받을까 싶어 두려웠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릴 때까지 이렇게 얌전히 가만히 서서 당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뇌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 뒤에 붙어 있던 그 새끼는, 이제 내가 잠자코 있을 거란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거침없이 비벼댔다. 아, 정말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그냥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몸을 비틀고 움직여 옆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동했다. 마침 한 명이 정류장에 내리니 딱 그만큼 공간이 생겨 옆으로 움직이기 수월했다. 그런데!!!


내가 옆으로 자꾸만 밀고, 원래 내가 있던 자리는 한 명분의 공간이 비어 버리니 옆에 있던 친구와 내 자리가 바뀌고 말았다!!!


헉. 네가 왜 그쪽으로 가니... 

아니야. 미안해... 내가 괜히 이동해서...

아냐. 내가 움직인 게 죄는 아니잖아?

아니야. 그래도 미안해. 친구야...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떨구고 눈을 마주치질 못했다.

1시간 같은 1분이 흐르고 친구를 살짝 쳐다보았는데 그 친구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내 몸은 한결 편했으나, 마음은 너무 불편했다.


그렇게 몇 정류장이 더 지나고 목적지에 도달한 우리는 모두 버스에서 내렸다.


너무 황당하고 찝찝한 일을 겪어 무슨 정신으로 합창무대를 하고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는 일을 당하면 이야기하면서 토닥토닥 서로 위로해 줄 수도 있는 법인데, 그래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봉변을 당한 그 친구와 나는 둘이서 서로를 다독여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린 둘 다 서로에게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꺼내지 못한 건지, 꺼내지 않은 건지...



그런 기분 나쁜 일을 당하고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그때 그 친구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남아 아직도 이 일은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나쁜 새끼는 아직도 그러고 있는지, 계속 그러다 지금은 콩밥을 먹고 있는지, 형을 다 살고 나와 발목에 전자발찌는 차고 돌아다니는 건지...

아니,

궁금해하지도 않으련다.





우리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앞으로 네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만일 생기게 된다면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길을 잘 걸어가다가 어쩌다 재수 없어서 진 구덩이에 빠진 것뿐이라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너무 괘념치 말라고.




*photo by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 시집가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