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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pr 20. 2023

잊혀져 가는, 잊히면 안 되는

우리의 삶 끝자락에서

이 세상에 이별을 고할 때

 손을 잡고 있는 나의 사람에게

당신은 마지막으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출처. 블로그 달달하다캘리그라피



2018년, 막둥이가 여섯 살이고 두 살 터울의 누나는 이제 막 초 1이 되었을 때, 영화관에서 "COCO"를 보았던 것이 생각납니다. 애니메이션이므로 당연히 아이가 잘 볼 거라 생각하고 아무 의심 없이 표를 끊고 들어간 것이 제 불찰이었지요. 영화는 이제 막 초반을 지났을 뿐인데 등장인물은 곧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죽은 사람의 모습이 되어 있었고 해골 모양으로 꽉 찬 스크린을 보고는 막둥이가 무섭다며 "집에 가자."를 연신 외치는 겁니다. 결국 막둥이를 제 다리 위로 올려 스크린을 등지고 앉힌 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이를 껴안고서 관람한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 보여 주러 간 영화관인데 정작 아이는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지요.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버리면 죽은 자들의 영혼마저 아예 사라져 버린다는 이야기였는데 어두울 것만 같던 분위기는 의외로 밝은 느낌이 있었고, 우리가 다루는 죽음과는 좀 다르게 접근한 것이 신선했습니다.


출처. 네이버 카페. 부산 스페인어



영화 코코에서 위와 같은 제단이 등장하는데요. 언뜻 우리나라의 제사를 연상시킬 수도 있지만, 오프렌다스(ofrendas)라 불리는 이들의 제단은 엄숙한 예법이나 절차가 없습니다. 마치 축제인양 밝고 화려하게 꾸민 제단에는 생전에 고인이 좋아했던 테킬라나 담배,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등이 놓입니다.


멕시코에서는 매년 죽은 자들의 날(Día de Muertos 디아 데 무에르토스)이라는 축제가 해마다 10월 말 또는 11월 초에 열립니다.
멕시코의 이 특이한 날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도 2001년 5월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둘은 비슷한 듯 다른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종묘제례란 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으로, 조선시대의 나라제사 중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였기 때문에 종묘대제라고도 불린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조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드릴 때 의식을 장엄하게 치르기 위하여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 춤을 말한다.  ᆢ네이버지식백과


우리나라는 죽음을 슬퍼하는 추모형식으로 기리는 반면 멕시코는 거의 축제 분위기며 파티를 연상케 합니다.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자기 자신과 하는 다짐과도 같지요.




출처. m.post.naver.com 잡컴퍼니



핼러윈과 얼핏 비슷해 보이나 다릅니다. 핼러윈은 죽은 영혼들이 되살아나며 정령이나 마녀 등이 출몰한다고 믿고 귀신들에게 육신을 뺏기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유령이나 흡혈귀, 해골, 마녀, 괴물 등의 복장을 하는 것인데, 망자의 날은 죽은 친지나 친구를 기억하면서 명복을 빌어주는 의미라서 복장 또한 친구와 비슷하게 하여 친근감을 나타내는 것이라 의미가 많이 다릅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림수진의 안에서 보는 멕시코



멕시코의 사후세계는 음침함과는 거리가 좀 멀어 보입니다. 죽음을 어두움, 무서움, 공포로 생각하기보다는 따뜻하고 아름답고 심지어 친숙하게 대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거리에서 신나는 축제로 즐길 수 있는 것이겠지요.



영화 'COCO' 스틸컷



우리 인간의 기억은 참 불완전합니다. 때로 왜곡될 뿐 아니라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때도 있어서 종종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성수대교 붕괴사고(1994.10.21. 사망 32명, 사상자 49명),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6.29. 사망 502명, 실종 6명, 부상 937명. 6·25 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재해로 기록됨), 대구 지하철 화재(2003. 2. 18. 사망 192명, 실종자 21명, 부상자 151명) 사건은 그 당시 사람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렸지만, 이마저도 어느새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건 리스트에 299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를 하마터면 빼놓을 뻔한 것만 보아도 얼마나 망각의 힘이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어제는 4·19였습니다. 현생이 바빠 당일에 이 글을 올리지 못하고 하루 지난 20일에 이 글을 마무리 짓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364일을 잊고 살다가 단 하루만 떠올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요? 네. 그럴듯한 핑계입니다. 하지만 어느 특정일 하루만 기억하고 넘기는 것보다 자꾸 언급하고 떠올려서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 정권으로부터 맞선 186명의 사망자와 1,500여 명의 부상자분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맞선 그날의 영웅들이 있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고 우리가 있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영화 코코에 나오는 "기억해 줘" OST입니다.


https://youtu.be/iBTX6VkU2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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