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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pr 29. 2023

찌부러진 차바퀴

운전만 할 줄 알지 수습은 할 줄 몰라요

운전면허 실습을 할 때 강사는 묻는다.

운전대를 잡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뭐냐고.


1차원적인 생각을 즐겨하는 나는 고민도 않고 머릿속에 말풍선을 떠올린다.

운전대를 잡기 전에는... 운전석 문을 연다??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와 새어 나가지 않게 하려고 입술에 힘을 주어 웃음소리를 먹고 있는데


곧이어 강사가 하는 말.


"운전대를 잡기 전에는 차를 둥그렇게 돌며 차 외관을 점검해야죠."


그렇다. 차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슈욱 둘러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운전 생초보는 뻘쭘하다.

그 둘러보는 행위는 진짜가 아니라 연습인 걸 아니까.

아무 문제없는 차에게 괜히 한 번 그러는 걸 아니까.

둘러보는 습관을 기르라며 그냥 한 번 쇼를 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그리고 실제로 차에 문제가 있다고 한들 내가 차 보닛을 열고 엔진을 볼 것도 아니고, 엔진을 본다고 원인을 알 턱도 없다. 드라마 "로망스"에서 김하늘이 외치던 소리가 들린다.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야!" 나도 따라 외쳐본다. "너는 차고 나는 인간이야!" 한낱 여자 사람이 핸들을 요래요래 방향만 틀 줄 알았지, 차를 고칠 수 있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복잡한 차의 구조는 다음 생쯤에나 관심이 갈까,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은 영역이다. 이런 마음이니 한 바퀴 도는 나의 이 몸짓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는!

차 보닛 여는 방법도 모른다. ㅡ.ㅡ


그러니 차를 한 바퀴 비잉 돈다는 그 행위는 이상하게 내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들고 괜히 몸도 배배 꼬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하는 실습 중에 한 바퀴 돌아보지 않으면 총점에서 5점을 깎아 먹는 점수제도를 알기에 그냥 한 번 실실 돌아보며 차를 눈여겨 점검하는 척, 몰라도 잘 아는 척, 문제가 있으면 고칠 수 있는 척을 하며 차 주위를 배회하듯 걸어본다.





평일 하굣길 아이들을 센터로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차에서 내리는데 평소 같으면 차에서 후딱 내려 집으로 총총 걸어 들어갔을 텐데 괜히 뒤통수가 따끔따끔 머리 뒤가 따갑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퍼펙트하게 주차한 마이카가 자꾸만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어이~ 주인 양반, 나 좀 봐봐. 응? 나 좀 보고 가라구우~"


하고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그 말, 느낌이 이상할 때 무시하면 반드시 사달이 났었다. 잘 가던 걸음을 휙 돌려 다시 차 쪽으로 갔다. 불현듯 운전실습 때 차 주변을 둘러보고 외관도 돌아봐야 한다는 그 대사가 갑자기 떠올랐다. 차를 운전할 때마다 점검하라는 그 말을 나는 한 10년을 운전하면서 5번은 지켰을까. 생각이 난 김에 오랜만에 그 가르침을 한 번 따라볼까 싶어  돌아보려는데


어랍쇼??

자동차 바퀴가 수상하다.

빵빵한 기운이 없고 축 늘어진 듯한, 어째 힘이 없는 느낌이다.


"오호라... 네가 날 부른 거야? 나 좀 보라고 외쳤던 게 너야??"


다른 타이어 바퀴도 한 번 쳐다본다. 바퀴가 4개인 게 다행이다. 비교가 가능하니 말이다. 다른 아이들은 멀쩡하다. 빵빵한 기운이 있다. 거북이 다리로 치자면 왼쪽 뒷발 부분만 성치 않다.


흠... 기분 탓인가. 신랑한테 바퀴 사진을 찍어 톡을 보냈다.


"여보가 보기엔 타이어 어떤 거 같아? 나 기분 탓이야? 땅이 조금 고르지 않고 파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도 같은데, 자기가 보기엔 어때?"


당장 출동서비스를 부르란다. 어두우면 확인하기 어려워지니 최대한 빨리 부르란다.


30분 후 출동서비스 직원이 와서 둘러보며 하는 말

"못이 박혀있네요."


우와... 소름이 돋는다...

그냥 무시하고 집에 들어갔으면 이 못이 더 큰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출동직원은 힘주어 못을 뽑고 주황색 지렁이처럼 생긴 고무를 반을 접어 구멍에 쑤욱 쑤셔 넣더니 다 됐단다.


"이거 빠른 시일 안에 타이어 교체하러 가야 되는 거죠?" 하고 아는 척하며 물었더니, 아직 타이어 마모가 적어 더 타도 된단다.


'우와... 타이어가 단단하긴 단단하구나. 풍선 같은 그런 개념은 아니구나. 더 타도 되는구나. 신기하다.'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할 남편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톡으로 알렸더니 "자기, 차 잘 보고 다니네. 잘했어." 하고 답이 왔다. 우연찮게 요번에 잘 얻어걸린 것뿐인데 칭찬까지 들었다.


아무튼 차를 한 바퀴 쉬익 돌아보지 않았다면 큰 일을 당할 뻔했겠단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차를 고치는 법은 몰라도 가끔 한 번씩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아보고 바라봐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차야~ 내 비록 널 잘 알지는 못하고, 고치는 건 더 못하지만 아픈 건 빨리 알아채도록 노력할게. 우리 오래오래 같이 잘 살아보자꾸나.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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