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가로등 불빛만 남아 어두운 길을 밝히니 빛이 닿지 않는 곳곳은 어둠이 깔려있다. 모퉁이를 돌아 바쁜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어스름한 곳에서 남녀가 싸우고 있었다. 대학생 느낌이 나는 그 남녀는 연인 느낌도 물씬 났다. 연인들에게서 느껴지는 느낌, 딱 꼬집어 연인인 이유를 대지 않아도 그냥 언뜻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그들은 연인이었다. 둘은 싸우고 있었다. 매우 거칠게.
전봇대 쪽으로 여자를 밀치는 남자, 그 남자를 두 팔로 온 힘을 다해 밀어내려는 여자. 주변 시선은 아랑곳 않고,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둘은 아직 사랑이 끝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만일 정말로 헤어지려 하는 연인이라면 저리 힘들여 싸울 필요가 없을 터였다. 무관심이 극에 달한 커플이라면 말 한마디 주고받는 것도 무척 힘을 들여야 할 테니까. 그래서 그 둘은 서로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자신의 마음을 도로 가져오지 못한 상태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서로의 마음이 사그라들까 봐 불안한 모습이다.
사랑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지만, 그 불씨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로 꺼져가려 하는 상황인데 버티다 못해 지친 서로는 그만두자고 하면서도 쉬이 놓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성은 서로를보내줘야 한다고 결론이 이미 났지만 감정은 보낼 수 없다고 포효하는 듯한 슬픈 싸움이었다.
그 슬픈 모습을 보며 돌아서는 고3인 나.
어리다고 하면 아직 어린 나이지만 다 컸다고 보면 또 다 컸네 할 나이. 뭐라 딱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보였다. 둘의 마음이. 격렬하게 서로를 원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애달팠다.
훌쩍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1년이 좀 넘었을까.
끝을 모르는 감성으로 가득한 나였고, 온통 이성으로 중무장한 남편이었으므로 우리 둘의 공통점은 별로 없었지만 다행히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해서 참 다행이었던 남편과 나는 세상 편한 자세로 누워 노래 프로그램을 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판타스틱 듀오에 태양의 노래 "눈, 코, 입"을 듣고 둘 다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특히 머리카락이 쭈뼛 솟는 거 같아 찌릿함에 온몸은 전율했다.
처음 시작한 둘은 애틋했고 온 세상이 모두 자신을 위해 있는 듯 보였겠지.
그 둘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고 다른 모든 걸 다 버리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겠지.
서로의 마음만 있으면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세상은, 인생은, 현실은 있는 힘껏 그 둘을 방해했고,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사랑하지만 서로를 보내줘야 하는 그 둘.
보내는 게 맞는데 보낼 수 없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