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CF 노래로 이렇게 덕을 보다니.
CM송이 나올 때마다 따라 부르기를 습관화하더니 어느새 정말로 자신의 할 일을 척척척 스스로 해내는 우리 집 막둥이다.
굳이 하나하나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해내는 초4 막둥이는 이 엄마를 크게 신경 쓰이게 하는 일이 없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지만 신은 누구 하나 편애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그렇게 싫은지 막둥이에게 자율성을 준 대신 훤칠한 키는 주지 않았다. 이제 초등 4학년인데 너무 이른 걱정 아니냐 할 수 있지만, 또래에 비해 월등히 작은 키는 걱정을 안 할 수 없게 한다.
이제 곧 5학년이 될 텐데 초3 아이들과 당장 어깨동무를 한다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만큼 아주 앙증맞은 키이기 때문이다. 외모가 출중해도 키가 작으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아, 183cm인 차은우는 키가 작아도 사랑을 받을 것 같기도 하고. 키가 작아도 만인의 사랑을 받는 톰 크루즈(170cm라고 하나 169.5를 반올림하여 적은 느낌적인 느낌)를 제외하고 다른 키 작은 사람은 잘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역시 남자는 뭐니 뭐니 해도 키인가 싶다.
우리나라 연예인 중에서 키가 작은 남자를 굳이 찾아 언급하자면 개그맨 허경환을 들 수 있는데 프로필을 보아하니 167~169cm라고 되어 있다. 프로필에 키를 물결 표시 해놓은 건 또 보다 보다 처음 보네. 컨디션에 따라 키가 167도 되었다가 169도 되었다가 하나 보다. 대충 올림 해서 얼마나 170이라고 쓰고 싶었을까. 키 작은 남자들의 애달픔, 비애가 마구 느껴진다. 나 또한 160이 될락 말락, 키가 크지 않으나 여자라서 정말 다행이다. 가수 벤은 147cm이지만 여자라서 보게또(포켓)에 넣고 다니고 싶다며 귀여워만 하니 다시 한번 남자들이 느낄 속상함에 같이 마음이 저려온다.
일찌감치 식사를 끝내고 한가로운 저녁.
아들이 내게 자신의 몸 상태를 알려왔다.
엄마,
나 어제부터 다리가 계속 아파.
성장통인가 봐.
오~ 축하해.
이제 시작인가 봐. 키가 멀대같이 엄청 커지면 어떡하지?
네가 지금부터 아무리 커봤자 180cm는 될까 싶지만 괜히 반응을 보고 싶어 질문을 해봤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재미있다.
근데 나 키 크면 좀 이상할 거 같지 않아?
아직 크지도 않았는데 키가 너무 클 걸 걱정하고 있는 막둥이라니. 걱정은 붙들어 매도 될 것 같은데.
왜? 네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네가 귀여운 것 같아?
아니, 키 작은 거에 익숙해졌어.
표정에 겸연쩍음이 잔뜩 묻었길래 재미있어서 못 들은 척 다시 물었다.
네가 생각해도 네가 귀여운 것 같구나?
아니 키 작은 거에 익숙해진 거 같다고.
넌 네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내 말을 듣고 있기는 한 거야?
큭큭큭 한방 먹었다.
앙증맞은 키로 어른스러운 말을 하면 그게 그렇게 웃기는 나.
몇 분이 흘렀나. 막둥이 대사가 재미있어서 브런치 서랍에 넣어두려고 끄적이는데 아, 이 건망증, 벌써 기억이 안 난다. 마치 비밀을 이야기하듯 은밀하고 조용하게 아들에게 물었다.
아까 너 성장통 다음에 뭐라고 했었지?
왜? 브런치에 또 쓸려고?
아, 눈치챘다. 이 자식.
괜히 쑥스러워진 나는 어른의 특권인 거짓말을 해 본다.
아냐 안 써. 근데 쓰면 안 되는 거야?
아니. 근데, 난 추리하면 안 되는 거야?
아주 엄마를 이겨먹으려고 하는 아들내미.
속싸개, 겉싸개로 똘똘 싸서 응애응애 울다가 쭈쭈를 쪼옥쪼옥 빨던 놈이 언제 저리 컸을꼬. 큭큭
기억력을 총동원하여 쓰다 만 것을 몰래 꾸역꾸역 거의 마지막 문장을 핸드폰에 두드리고 있는데 내 어깨 뒤로 슬며시 다가와 핸드폰 화면을 보고는
이거 봐, 이거 봐. 썼네, 썼어.
하고 씨익 웃는다.
아, 딱 들켰네. 이거 나중에 너 어른 되면 보여주려고 그래. 인마.
오늘도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말았네. 아들과 핑퐁 대화 덕에 좀 전까지 내게 머물던 괜한 우울감이 좀 사라지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