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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ug 04. 2023

영어시험을 보고 화장실에서 우는 막둥이

울긴 왜 울어

"엄마, 나 센터 안 가면 안 돼?"


센터에 가면 공부뿐 아니라 놀이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으니 집에 있는 것보다 센터 가는 걸 더 좋아하던 초3 막둥이가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다. 친구들 사이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싶어 이유를 물었더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친구 문제가 아니라 영어공부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란다. 영어단어 시험을 보고 채점받은 시험지에 동그라미가 별로 없어 화장실에 들어가 아무도 몰래 울기까지 했단다. 어린 나이에 빨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시험지가 익숙지 않아 속이 많이 상했나 보다.


아이의 침울한 표정을 보니 어느 정도의 난이도인지 궁금해졌다.

까짓 초등영어야 어려워봤자 얼마나 어렵겠나 하고 아이의 책을 열었는데 흠...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공부했던 영어의 난이도와 거의 흡사하다. 나 중1 때 제일 처음 나오는 영어 대화문이 갑자기 떠오른다. 전 국민이 졸업한 지 한참이 되어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그 전설의 대화문.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

(그다음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나 어릴 적엔 중1 때 영어를 처음 접했고 따라서 알파벳도 그때 겨우 배우기 시작했으니 애초에 비교는 무리수다. 요새는 초등 때 이미 교과 과정에 영어 과목이 들어가 있으니까. 요즘 애들 참 피곤하겠다. 한국말도 제대로 안 되는데 영어까지 해야 하다니. 얼른 한국어가 세계공용어가 되어야 할 텐데...



어찌 됐든

얼마나 어려우면 화장실에 가서 울기까지 했을까. 초등 3학년이 무슨 어려운 영어수업을 듣길래 화장실에 가서 울 정도란 말인가. 초등 시절 아예 영어를 배운 적 없었던 나의 학창 시절과 비교하기가 어렵긴 하다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크게 어려운 것 같지는 않은데 막상 원인을 찾아보니 단순했다. 언어는 단어 암기가 필수인데 영어 단어를 미리 집에서 암기하지 않고 텅 빈 깨끗한 머리로 시험을 친 이유였다. 그때부터 영어 단어를 집에서 미리 외우게 하고 다음날 시험을 보게 했더니, 막둥이는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100점을 맞았다며 잔뜩 신이 나 종알거렸다. 아이가 큰 깨달음을 얻길 바라며 놓치지 않고 한 마디 얹어 주었다.  


"거봐. 반복하고 연습하면 잘할 수 있어. 애초에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하거나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거야."


그로부터 1년이 꼬박 지나 4학년이 된 지금은 영어 수업이 있기 전에는 알아서 8시 알람을 맞춰 놓고 알람이 울리면 스스로 공부를 시작한다. 이제는 몇 번 쓰지도 않고 몇 번만 읽어봐도 외워지는 경지에 올랐나 보다. 영어 단어 20개를 10분도 채 안 돼서 "다 외웠다~! 이제 점점 외우는 시간이 짧게 걸리는 것 같아!" 하고 외치는 막둥이다. 그럼 나도 "브라보! 막둥이!" 하고 같이 외쳐 준다.






딸내미가 어느 날 학교에서 실로폰 모양을 꼭 압축시킨 것 같은 모양의 악기를 받아왔다. 이름도 생소한 "칼림바"라고 했다. 단음으로만 하나하나 치던 아이가 단조로워 심심했던지 화음을 넣으려는 시도를 했다. 어설프지만 양손으로 띵까띵까 연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어느 날 "호랑수월가"를 연주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저게 되겠어? 했는데 세상에 그게 되더라. 화음까지 넣고 연주를 하는 거다. 세상에! 칼림바 아티스트인 줄!!


이런 건 찍어야지. 동영상으로 남겨 두고두고 봐야지 싶어 얼른 찍어 기록을 남겼다.


제일 처음 칼림바를 손에 들고 도레미파솔라시도만 겨우 치던 딸내미 모습이 떠올랐다. 그 후 "학교종"을 겨우 깔짝깔짝 치더니 어느 날 유튜브를 뒤져 음계에 쓰여 있는 숫자를 하나하나 다 보고 적고는 밤낮으로 뚱까뚱까 연주를 했다. 이 노래를 잘 모르던 남편도 멜로디를 흥얼거릴 정도면 얼마나 반복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딸이 연주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아이 때 마음과 달라진 건 하나도 없건만 나이를 먹었으니 등 떠밀려 자동으로 어른이 된 우리.

나이가 30이어도 10대의 동심은 불쑥 튀어나오고, 마흔이 되어도 스무 살의 풋풋한 마음가짐과 비교했을 땐 별 차이가 없다. 50이 되어도 60이 되어도 젊을 때 마음과 다를 게 없다고 인생 선배님들께서 말씀하시던데, 그러니 우리 어른도 어린아이 때처럼 늘 처음은 어렵다. 나이 많은 건 싫다면서도 불리할 땐 이 나이 먹고 내가 그걸 할 수 있겠냐며 나이를 앞세워 쉽사리 포기한다.


처음이라 미흡한 건데 나는 소질이 없는 거라며, 나에겐 재능이 없는 것 같다며 재빠른 포기를 한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하고 끈기 있게 계속하여 연주다운 연주를 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어른인 나는 또 아이에게서 배운다. 뭐든 끈기 있게 한결같이 꾸준히 하다 보면 결국엔 길의 끝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거북이 기듯 느린 속도라 해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함을 좀 밀어붙이면 어떨까. 목표의 끝에 도달하여 환하게 웃고 있을 나를 상상하며.



골인하는 거북이가 되어보자.
나도
당신도.



출처. shutterstock





칼림바로 "호랑수월가" 연주하는 딸내미




*대문 거북이 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한 Kanenori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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