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늦게 잔 탓인지 잠이 덜 깨서 운전할 때 초집중하느라 애를 먹었다. 시동을 끄니 몸 에너지가 바닥난 느낌이었다. 3분만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내려야겠다 하고 편케 앉아 쉬려고 좌석을 뒤로 조절하는데 누군가 차 창문을 노크했다.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세상 선량해 보이는 얼굴의 남성이었다.
차 문을 열었더니 대뜸 내 차를 자기 차 앞에 대 줄 수 있느냐 물었다. 오전 시간이라 주차할 데도 많은데 주차공간도 아닌 곳에 굳이? 하는 생각에 네? 하고 물었더니 자기 차가 시동이 안 걸려서 내 차를 좀 대 주면 점프선 연결해서 시동을 걸겠단다. 엉? 다짜고짜? (근데 절 아세요?)
나는 뭐라고 확실히 답을 해 주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며 일으킨 몸을 다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재빨리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지금 이런 상황인데 보통 이런 경우가 더러 있느냐, 해 주는 게 맞는 거냐 물었더니 바쁘다고 핑계 대고 해주지 말란다.(남편이 은근 칼 같은 구석이 있다.) 좀 야박하긴 하지만 나도 이상하다는 쪽으로 기울긴 했다. 보통은 시동이 안 걸리면 긴급출동을 불러서 해결하지 않나? 아니면 차끼리 물리적 접촉을 하는 건 간단하지 않은 느낌인데 그런 경우 지인에게 부탁하지 생판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부탁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운전은 하지만 운전만 할 줄 알지 차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으니 혹시 괜한 선행을 베풀다가 내 차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어찌 해야 할 줄 모르는 내가 참으로 당황스럽다.
결국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가타부타 대답도 안 하고 차 안에 앉아서 전화 통화나 하면서 뭉그적거리는 결과가 되었다. 그런 나를 보며 거절의 뜻으로 알고 진작에 자신의 차로 도로 가서는 열심히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남자... 얼굴이 참 선해 보이는데 그냥 해 준다고 할까? 아니지, 나쁜 사람은 뭐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나...
그에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좀 의아했다.
긴급출동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던데 왜 출동을 부르지 않는 거지? 출근하는 사람 복장이라면 시간이 촉박해서 그런가 하고 이해라도 될 텐데 복장도 매우 편안해 보이는 일상복이니 계속 의구심만 일었다.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은 불편했지만 이상한 생각이 자꾸 들어서 돕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급하게 손님이 오는 척 연기를 하며 제가 바빠서 어려울 것 같아요 하고는 뛰듯 걸어 집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운전자가 길가에 유아차(유모차) 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이상해서 혹시 아기가 혼자 있다면 도와주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괴한들이 일부러 쳐 놓은 함정이라고 했다.
또 최근에는 길거리에 떨어진 지갑을 줍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갑을 주워서 안에 든 신분증을 확인해야 주인을 찾아 줄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지갑을 주으면 숨어 있던 지갑 주인이 튀어나와 지갑 안에 있지도 않은 돈을 훔쳐 갔다며 뒤집어 씌우는 일이 많기 때문이란다.
선행을 베푸려 하다가 오히려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은 요즘이다.
아무 의심도, 대가도 없이 서로를 돕고 살며 마음 푸근히 지냈던 멀지 않던 예전이 생각나 마음이 참 씁쓸하다.
아!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나와 같은 생각으로 모두가 날 외면할 수도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