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갈 채비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일언반구 언급도 않던 아이였는데 차에 올라 내가 시동을 걸자 막둥이가 오늘 부회장 선거가 있다고 했다. 2학기가 시작된 지도 꽤 지난 것 같은데 이제 선거를 한다고? 뭔가 이상해서 갸우뚱하니 딸아이가 동생에게 너희 반은 선거가 왜 그리 늦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부회장이었던 아이가 며칠 전 전학을 갔다고. 나는 조금 떨렸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혹시 너 출마한 거냐 물었더니 아니란다. 휴... 하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그래, 그럼 투표 잘하고 오렴." 하고 보냈다. 시간이 흘러 하교하면서 아이는 오늘 있었던 선거 이야기를 마저 꺼냈다.
"엄마, 나 아쉽게 부회장이 못 됐어."
"응? 너 출마 안 했었다며?"
"응. 근데 마음이 바뀌어서 출마했어."
헐... 대사 맨 처음에 부회장이 안 되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듣고 시작했는데도 혹시나 반전이 있을까 봐 콩닥콩닥 괜히 심장이 뛰었다.
"후보가 되면 앞에 나가서 공약도 발표해야 하고 그러지 않아? 근데 너 공약 준비한 거 없었잖아."
"으응. 학교에서 내가 준비했지."
"응? 언제?"
"오늘."
헉... 이런 깜짝 놀랄 서프라이즈가 있나. 다행히(?)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라 마음을 진정시키고 오늘 무용담을 들어보기로 한다.
"후보가 몇 명이었는데?"
"4명."
"넌 몇 표였는데?"
"그니까 내가 얘기하는 중이잖아. 먼저 좀 들어 봐."
"아~ 네에~~ 큭."
"4명 중에 한 명은 바로 탈락했어."
"응? 왜? 바로 탈락은 뭐야?"
"후보자로 찬성하는지 안 하는지 애들이 손을 드는 게 있는데, 최소 다섯 명은 넘게 손을 들어야 하는데 걔는 두 명밖에 안 들어서 탈락했어."
"아이고. 저런."
남의 자식이지만 속이 쓰렸을 그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린다.
"그럼 너는 몇 명이나 손을 들었어?"
"휙 둘러보니까 거의 다 손 들었던데?"
헉... 분명히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또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그래서 그다음은?"
"셋이서 투표를 했는데 나랑 석민이가 둘 다 9표가 나온 거야. 그래서 다른 한 명은 또 탈락했어."
"그래서 너랑 석민이 둘이서만 또 재투표를 한 거야?"
"응. 둘만 다시 했는데, 석민이가 나보다 1표가 더 많이 나와서 걔가 부회장 됐어."
아이고, 아까워라. 분명 안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투표용지를 열어 한 표 한 표 이름이 불렸을 때 조마조마했을 아이 모습이 그려지는 데다 고작 1표로 아깝게 떨어져 무척 아쉬웠을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나도 같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근데 넌 왜 부회장이 하고 싶었어?"
"음... 그건 말하고 싶지 않은데."
"에이, 엄마 궁금하다. 왜 하고 싶었는데~ 말해주라~"
"음... 그건... 나도 애들한테 조용히 하라고 말하고 싶었어."
"ㅋㅋㅋㅋ 야! 야!! 야!!! 내 밑으로 다 조용히 해!!! 뭐 이런 게 하고 싶었던 거야?"
개그맨 유세윤의 한참 지난 유행어를 표정에다 기합까지 넣어 똑같이 따라 해 줬더니 아들이 까르륵 한바탕 웃는다. 자신의 마음이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미세하게 풍기는 겸연쩍은 표정과 함께.
대부분 엄마들은 자녀가 회장, 부회장이 되면 좋아라 하고 기뻐하던데 파워 내향형인 나는 이야기를 줄곧 들으면서도 제발 되지 말아라 되지 말아라 속으로 빌었다. 그러고도 네가 엄마냐?
회장이나 부회장이 되면 학급을 위해 아이들만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회장 엄마, 부회장 엄마도 학급을 위해 학교에 모여 지혜를 나누는 회의도 자주 하고 같은 반 다른 엄마들에게 공지도 전달하고 선생님과 교류도 자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이기 전에 파워 내향형에 지나지 않는 한낱 인간일 뿐인 나는 그 모든 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눈치 빠른 아들은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엄마는 내가 부회장 되는 게 싫어?"
하고 물었다.
"어? 음.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하고 얼버무리는데 올해 4학년인 아들이 지나가면서 묵직하게 한 마디 했다.
"5학년 되면 다시 도전해야지~"
컥... 그냥 그런 거 안 하면 안 될까?
아니다... 그래... 엄마가 바뀌어야지, 네가 하고 싶다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너의 앞길을 막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