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한 단을 다듬어 씻고는 냉동고에 쟁여 넣으려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날따라 파에서 유독 매운 내가 났다. 파를 냉동고에 넣어 보관할 땐 미리 잘 썰어 두어야 나중에 음식 하기 수월하니 깨끗이 씻은 파를 키를 맞춰 쫑쫑 써는데, 내가 공격하니 파도 나를 공격했다. 칼질마다 매워도 너무 매웠다. 눈물이 났다. 코도 시큰했다. 금세 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었고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닦으려 키친타월을 하나 툭 뽑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이제 막 알고 지내며 사귀자고 약속한 일곱 살 차이 나는 오빠였다. 갑자기 난 장난기가 발동했다.
"여보세요~"
"오빠... 흑..."
"어? 너 왜 그래?"
"흑흑... 흐흐흐흑. 엉엉~~"
"......"
"파를 써는데 파가 너무 매워서 그만, 눈물이 났어~ 흐엉 엉엉~"
우는 연기를 하다 웃음이 터진 나는 깔깔 나 혼자 웃어버리고 말았다. 웃음 섞인 목소리로 자조치종을 간략이 말했지만 오빠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리곤 소리를 질렀다. 같이 까르륵 웃어줄 줄 알았는데...
"... 야!!"
하고버럭 화만 내고는 다짜고짜 전화를 끊어버린 그...
나를 집어삼켰던 걱정이 소멸하면 근심 대신 그 자리는 안도가 찾아오니, 별다를 것 없는 반복된 일상에 행복이 깃든 것 같은 착각이 혹시 들까 싶어 장난을 쳐 본 건데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버린 그에게선 하루 내내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렇게 3일이 흘렀나.
그의 정체를 건너 건너 친구의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가 유부남이었다는 걸...
평소에 나와 약속을 잡을 때마다 주말은 안 된다고 했던 게 좀 걸리긴 했지만, 회사 일이 바쁜 거겠지, 집에 대소사 때문이겠지 하며 이해심이 많은 나는 그저 이해만 했었다.
그래서 주로 평일에 만났었다. 오빠가 회사 끝나는 시간에 같이 밥을 먹고 저녁 데이트만을.
근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다.
유부남이니 가정에 충실해야 했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주말엔 나를 만나러 집 밖을 나올 수 없었던 거였다.
장난 삼아 우는 연기를 한 나에게 안심하거나 웃어넘기지 않고, 화를 심하게 냈던 건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 되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던 옛말이 계속 머리에 남았을 테고 아내를 속이며 나를 만나다가 아내에게 걸리고 만 건가 심장이 내려앉았겠지. 아니면 자신의 와이프가 나를 찾아가 내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흔들어대서 내가 그토록 서럽게 울었나 하고 그 짧은 시간에 상상의 나래를 폈던 것이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