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결혼하여 신혼 때, 둘 사이 아직 아기가 없던 때, 둘이서 틈만 나면 서로 얼굴만바라보던 그때, 하도 얼굴만 보다 얼굴이 그만 닳아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싶어 남편 얼굴에 내가 화장을 한 번 해 준 적이 있다. 정말이지 이건 신혼 때나 가능한 일이다. 아주 깨를 볶았던 지난날. 아~ 옛날이여... 새빨간 립스틱도 발라 주고, 복숭아색을 닮은 볼 터치도 두들겨 주고, 마스카라로 속눈썹도 쭉쭉올려 주는데 어쩜 그리 속눈썹이 긴지 시험삼아 성냥개비를 올려 봤더니 무려 3개가 거뜬히 올라갈 정도로 길었다. 낙타인 줄.
너 참 속눈썹이 무척 길구나?
화장 때문에 속눈썹이 말려 위로 올라간 것이지 평상시 맨 얼굴의 긴 속눈썹은 자꾸 아래로 쳐지고 눈동자를 찌른다고 했다. 찌르다 못해 장렬히 전사한 눈썹의 시체는 눈 안에서 잠들어 버리니 남편은 화장실에서 수도꼭지에 얼굴을 디밀고 눈동자에 수돗물을 흘리며 속눈썹을 빼내려 애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수도꼭지와 사랑을 나누는 줄.
한 번은 어머님께서 내게 전화를 주시곤 뜬금없이 당신 아들 쌍꺼풀 수술 좀 시켜주라고 얘기하셨다. 그러니까 속눈썹이 눈동자와 척을 진 지는 꽤 오래된 역사였던 것이다. 아니, 알고 계셨으면 결혼 전에 직접어머님께서 시켜 주시지, 결혼하고 10년도 더 넘어 이제 다 늙었는데(?) 이제서야 말씀을 하시는지. 쌍꺼풀 수술을 시켜 주라고 하시는 말씀에 "어머님. 저희 집 경제권을 애들 아빠가 갖고 있어서 제가 시켜주고 말고 할 게 없어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님은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그런 이야기가 오가고 또 시간이 꽤 흘러 남편 혼자 본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어머님께서 남편에게 직접 권유를 하셨단다.
이번 겨울에 연차가 꽤 길다 이야기했더니 그 기간에 쌍꺼풀 수술을 하라고 하셨다고.
어머~ 어머님~~ 쌍꺼풀 수술은 무쌍이면서 여자인 제가 해야지, 남자가 무슨 쌍꺼풀 수술씩이나 하나요~~
그냥 마스카라로 계속 제가 올려주면 안 되나요~
성냥개비가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을 정도로 팍팍 올려볼게요~
라고 나 혼자서 마음의 소리를 중얼거리는데
매일매일 마스카라로 올리는 건 너무 볼썽사나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번 겨울에 둘이 같이 수술을 할끄나. 아니다. 칼 대는 건 너무 무섭다. 이번 생에 나는 그냥 동양미 가득한 여자로 살아야겠다. 쌍꺼풀 진하고 왕방울만 한 커다란 눈은 다음 생에 만나자.
괜히 조금 아쉽다.
보자 보자~ 쌍꺼풀 없는 여자 연예인이 누가 있더라. 박보영, 김고은, 김다미, 전여빈 아이고 많네~ 착각하며 살아야겠다. 나도 그들과 같은 눈을 가졌으니 예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