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Oct 09. 2023

저기요. 마스크를 왜 눈에 씌우시나요?

자고 있다.

미라클 모닝으로 미라클을 이뤄보겠다는 사람들은 새벽 5시부터 하루를 시작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밤부터 새벽 시간에 집중이 더 잘 되는 사람이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가 없다.

아이들은 모두 일어났고, 남편도 아이들을 챙기려 일어났고, 거실에서 잠을 자는 나는 애들이 일어났거나 말거나, 남편이 아침밥을 준비하거나 말거나 나는 모르겠어요, 몸을 일으킬 수가 없어요 배 째라 마음으로 그냥 누워 있다.


, 옛날 같으면 소박맞을 여편네다. 요즘 시대에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하지만 누워 있다고 자는 게 아닌 게 TV는 켜져 있고, LED등은 환하게 켜져 있고, 주변의 모든 것이 나를 방해하는 중이다.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 보라고 나를 향해 공격한다. 하지만 공격하거나 말거나다. 그냥 누워 이불을 끌어올려서는 빛을 피하려 얼굴을 덮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불이 들춰진다.

아. 누구야. 10분만 더 자겠다고. 제발. 날 좀 가만 놔두라고.

게으름을 부리는데 응? 얼굴에 뭐가 씌워진다. 귀에 고리도 걸린다.  


그러더니 애들은 나의 얼굴을 보며 큭큭 웃어댄다.

눈에 안대를 씌운 것 같은데, 안대가 웃길 일인가.

가만,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는 안대가 없는데 어디서 난 안대지.


부신 눈을 간신히 떠서 안대를 들고 봤더니 엇! 마스크다. 하하.

그런데 마스크를 그냥 내 눈에 씌워 준 게 아니라 뭘 덧대었다. 앗! 검정 색종이다. 큭


와... 귀엽다. 귀여워.

눈이 부셔서 이불 뒤집어쓴 마누라가 이불 안에서 산소가 부족해 숨 쉬는 게 답답할까 봐 이불을 내리고 안대를 씌워 줘야겠다고 생각한 건가.

그것도 모자라, 흰색 마스크는 쓰나 마나 눈이 부실 테니 세심하게 검정 색종이를 덧댄 친절함이라니.

색종이를 대충 올리면 결과물이 부실할까 봐 투박한 손으로 조물조물 만지는 과정을 떠올리니 이렇게 스위트할 수가 있나.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생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용감한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나도 여자이고 그래서 작고 반짝이는 것을 참 좋아하긴 하지만, 비록 반짝이는 건 아니어도 아내를 위해 마음 써주는 그 마음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글을 남긴다. 

거기에 웃음까지 함께 얹어 주니 어찌 마음이 흐뭇하지 않을까. 

오늘도 이렇게 감사하고 웃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에잇. 고마운 사람 같으니. ^^


저 인형은 얼굴이 작아서 다 덮인 것이고, 난 저렇게 다 덮이진 않는다. 번쩍거리는 스테이플러 심이 각이 안 맞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어차피 눈을 가리면 안 보이니까 패애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